- 시를 쓰며 마음 다잡기
어떤 각오
-서로
살다보면
각오 같은 게
필요한 날이 있다
이 악물고 눈을 떠야 하고
주먹 꽉 쥐고 일어나야 하는
그런 날 말이다
물에 젖지 않고는
바다에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밀려올 많은 파도들 앞에서
겁먹을 때처럼
각오가 필요하던 날
우연이었을까
한 마리 어린 새가
두 손안으로 날아들었다
쌕쌕 희미한 찬 숨을 뱉던
고 어린 새는
주먹손은 기도손으로
이 악물던 숨은 따스한 입김으로
변화시켜 주었다
어떤 각오는
한없이 순하고 보드랍기도 하다
대통령이 바뀌었다. 또 어떤 교사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이제 갓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의 부모들은 기차게 학폭 신고를 하고 있으며, 얼마 뒤면 어른이 될 고등학생들은 부모와 스승에게 주먹질과 칼질을 해 격리되고 있다는 뉴스가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가시소년들을 당해내느라 온통 가시투성이가 된 많은 이들은 병리적 고통을 겪으며 약을 먹고 휴직 중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동네에 소아과가 다섯 군데나 있었는데 두 곳만 남았고, 그중 한 곳은 한 명의 의사만 남아 있다. ‘이렇게는 안 돼. 도움이 필요해.’ 여기저기 백방으로 알아보고 문을 두드렸더니, 그들은 돈을 원했다. 누군가의 고통으로 돈을 벌려 하는 사람들.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나만 그랬을까. 마음이 자꾸만 무너져 내리던 이들. 어디선가 계속되고 있는, 우리의 일상을 되찾기 위한 노력들. 그 흐름은 내게도 전달되었다. 특수교사와 배움 현장을 함께 변화시킬 일반 담임교사를 찾는다는 연락이었다. 속을 열어보니 발달적 이슈뿐만 아니라 임상적 이슈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을 품고 5년간 꽤 힘든 연수와 수련, 수퍼바이징에 자문위원, 학회 활동까지 해야 하는, 솔직히 말하면 숨 막히는 프로젝트였다. 5년이라니. 2~3년이면 교사로서 한 번쯤 이런 삶도 살아봐야지 하며 했을 텐데 5년이라는 조건 앞에서 나는 크게 흔들렸다. 오죽했으면 5년이라는 조건을 걸으셨을꼬.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만 줄 수 있다. 내 안에 평강과 사랑, 지혜와 치유가 없는데 도대체 뭘 더 어쩌라구!! 내 속에도 비명이 가득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러던 말던 세상은 무심히도 참 잘 흘러갔다. 특히, 아이들은 그랬다. 담임 선생님 속은 이런 줄도 모르고, 갓 태어난 어린 새 마냥 곱고 고운 1학년 아이들은 거리낌 없이 내 속을 파고들어 왔다.
한 어머님께서는 유치원 내내 강박과 부정, 반항으로 입 한 번 열지 않았던 아이가 학교 가는 게 너무 좋다고 매일 생글생글 웃는다고 기쁜 눈물을 전하셨고, 한 어머님께서는 맨날 여기저기 아프다고 유치원 내내 분리불안과 함께 꿈쩍도 안 하던 아이가 다리에 깁스를 했는데도 학교 가고 싶다고 울었다고 울으셨다. 학습부진으로 경계선 지능을 가진 줄 알았던, 섬뜩하다 싶게 오빠들과 어른들에게 신체접촉을 시도하던 한 여자아이는 놀랍게도 반에서 수학 대장이라 불리우기 시작해 지금은 책과 연필, 지우개와 온종일 신체접촉 중이고, 뼈가 잘 자라지 않아 한 달에 두어 번 대학병원에 가는 한 줌처럼 작은 어떤 아이는 매일 아침 학교에 오자마자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내게 와서 나를 꽉 안아준다. 막상 나는 아이의 약한 뼈가 혹시 상할라, 아이만큼 꽉 안아주지 못하는 소심하고 부끄러운 교사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6월 초. 아이들이 입학한 지 기껏해야 석 달 정도 지났다. 약 100일 정도였을까. 내가 잘나서, 대단히 훌륭하고 지혜로운 교사라서 아이들이 겨우 100여 일 만에 그렇게 변했을까. 아니다. 내게는 맨날 울컥함과 눈물을 삼키시고, 주말이면 영양제 주사를 맞으면서도 학부모나 학교, 주변 동료들이 뭐라 하든 말든 꿋꿋이 의미 있는 배움터를 만들고 계시는 두 분의 어벤저스급 대선배 동료 선생님들이 계시다. 너무 대단하셔서 하루에도 몇 번씩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만드는 엄청난 분들이시다.
우리는 지금 볼로냐에서 대상을 받으신 작가분께 읽기쓰기 수업을 들으며 아이들과 책을 만들고 있고, 어린이 뮤지컬 <거인의 정원>을 통째로 다 외우고 계시는 통뼈 굵은 뮤지컬 배우 및 교수님이신 분과 함께 <거인의 정원>을 춤추고 노래하고 있으며, 소고를 치며 창작국악동요에 맞춰 심신 수양도 하고 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이 와중에 우리는 오카리나도 불고, 줄넘기도 하고, 날씨에 맞춰 1~2주에 한 번씩 1학년 전체 소규모 운동회급 놀이 체육도 하고 있다. ‘학군이 좋은가 보지, 거기 분위기 좋은가 보지’라고 말하지 말아주시길 바란다. 한 분은 인공심장을 달고 계시는 분이고, 그 반에는 교실 한 개 층 창문 유리를 다 깨뜨릴 수도 있을 것 같은 수준으로 소리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며, 아무렇지도 않게 자해하는, 하지만 특수학급 아이도 아닌, 지능에 아무 문제가 없는 아이가 있다. 또 한 분은 갑상선 기능 이상으로 벌써 큰 수술을 몇 번이나 하셨고, 첫째 아이가 아스파거 장애가 있어 개인적 삶의 무거움도 크게 지고 계신 분이시다. 그 반에는 교사에게 아줌마 아저씨라고 부르며 손톱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피가 나도록 뜯고 할퀴어 교사들을 피 흘리게 하는 아이가 있다. 솔직히 3월 학기 초에 그랬다. ‘이게 가능해? 이게 된다고? 말도 안 돼!’ 그런데, 우리는 되고 있는 중이다.
생각해보면 할 수 있어서, 혹은 하고 싶어서 뭔가를 해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해야 해서 하다보니 기적 같은 일 년이 지나있고는 했다. 5월 한 달, 학폭을 들먹이며 끊임없이 전화를 하시는 1학년 학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학부모님들께서 나를 의지하고 계시고, 고마워하고 계시다는 걸 알게 되었고, 1학년 교사들 중 가장 못나고 비실비실했던 나는 그 덕에 무너지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할 수 있어서, 할 만한 능력이 있던 사람이라서 해냈던 게 아니었다.
어제였다. 또 한 건의, 학폭으로 갈 뻔했던 사안의 상담을 끝내고, 내가 뭐 했다고 어디로 숨고 싶어질 만큼 부끄럽게 어머님들의 “감사합니다”라는 말씀을 몇 번이나 들었다. 퇴근 전,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열었다. 5년이다. 그동안도 뭐, 어차피 할 수 있어서, 할 만한 사람이라서 해 온 게 아니었지 않은가. 문자 메시지에 담긴 링크를 타고 들어가 연수교재를 받을 집주소를 입력했다.
5월 한 달, 너무 힘들어서 분명 매일 아침 이 악물고, 주먹 꽉 쥐면서 겨우 이불 밖으로 나왔었는데. 오늘 아침, 신기하게도 순한 마음으로 눈이 떠졌다. 내일도 쉬고, 모레도 쉬어서 그러려나. 그렇게 순한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아 이 글을 쓰는 중이다. 각오라는 거. 이렇게 순할 수도 있구나. 오늘 나의 각오(覺悟)는 나를 순하게 각오(覺寤)하게 해 주었다. 신기한 각오다.
참고)
각오(覺悟): 앞으로 해야 할 일이나 겪을 일에 대한 마음의 준비
각오(覺寤): 잠에서 깸
올해부터 상담대학원도 다니고 있다. 무시험자격검정과정이라 첫 학기부터 실습이 있는데, 근래 미술치료에서 했던 작업 하나를 기록으로 남겨두며 오늘의 글을 닫아보려 한다.
내게 블로그에 글도 쓰고, 시도 쓰게 이끌어 주셨던 스승님께서 가르쳐주신 단어, '느루'라는 글자에 대한 나의 심상을 나타낸 미술치료작업 결과물이다.
느루: 늘. 한꺼번에 몰아치지 아니하고 오래도록.
내게는 '느루'의 '느'자는 온건하고 탄탄한 대지에, 고요하고 조용한 나무처럼 머무르는 모습 같고, '루'는 청량하고 세차게 흐르는 물빛, 넓고 깊게 파도치는 바닷빛 같이 보일 때가 있다. 특히, '루'자의 'ㄹ'은 구불구불 흐르는 강같다. 그래, 5년. 천천히... 오래도록... 흘러나가 보리라... . 은당크, 은당크, 은당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