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사주는 과학이야.”
얼마 전 유명한 철학관을 다녀온 A가 미간에 힘을 주며 말했다. 자신이 본 사주 이야기를 장황히 설명하며 손에든 맥주캔은 내려놓지도 않고 말하는 A를 보며 나는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디서 들어본 말이거든 매해 신년이 되면 바쁜 우리 집의 누군가에게서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들었던 말이거든. 그 우리 집의 누군가는 나의 엄마다. 나와 내 동생이 입시를 볼 때, 아니 그 훨씬 전부터 엄마는 이모들 혹은 절친들과 함께 사주를 보러 다녔다. 용한 철학관은 대체 몇 개인 건지. 이맛 저맛 아이스크림 맛보듯 엄마는 이 동네 저 동네 가리지 않고 다녔다. 본인의 말을 따르면, 맹신하는 것은 아닌 듯 하고, 신년이나 큰 행사가 있을 때 한 번씩 보는 정도인 거 같지만 그곳을 가는 엄마의 마음가짐은 사뭇 진지했다. 엄마같이 자기 논리가 강한 사람이 신년운세를 보러 나서며 ‘사주는 과학이야’라고 말할 땐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누군가는 사죽은 과학이라지만.나는 운세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보지 않는다. 가 아니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가끔 무료 운세를 심심풀이 땅콩으로 보기도 하고 풍수지리니, 귀신이니 각종 미신을 조금은 믿기기 때문이다.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것은 아니고, 빨간펜으로 글씨를 쓰면 괜히 찝찝한 정도까지 믿는다. 그런데도 운세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운세보는일에 좋은 기억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운세를 가장 처음 봤던 기억은 내가 중학생 때였다. 영화관 건물 내부에 위치했던 작은 타로점이었는데 동네에 유일하게 있던 영화관이어서 내 또래들도 많이 갔던 꽤 유명한 타로점이었다. 그때 나는 연애운과 코앞에 있었던 기말시험 운을 봤었다. 공부도 연애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욕심 많은 학생이었군. 타로 점술 사는 그해 내가 운명의 상대를 만날 것이며, ‘이번 기말고사엔 빵빠레를 울릴 것이다’ 라 말했다. ( 정확히 ‘빵빠레’라고 말했다 ) 타로 가게의 신비한 분위기에 압도당했던 나는 그 말을 곧장 믿었다. 그때 교과서 한자라도 더 볼걸. 나의 자기합리화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던 것일까. 당연히 그해 기말고사는 최악의 성적으로 빵빠레를 울렸고, 운명의 상대는 지금까지도… …아니, 그런 게 실존은 하는 걸까? 운명의 상대?
정말 운세를 보지 않겠다 마음 먹은 것은 한창 취업을 준비할 때였다. 당시 함께 취준생이었던 B와 나는 막막한 앞날을 알 수가 없어 철학관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타로, 신점, 사주 가리지 않고 점 보는 것을 즐기는 친구의 강력 추천을 받아 간 곳이었다. 골목 골목을 돌아 들어간 철학관에 한때 유행했던 프로그램, 사랑과 전쟁의 판사를 닮은 아저씨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앉아있었다. 아저씨가 표정 하나 없이 내 삶을, 내 친구의 삶을 읊기 시작했다. 용하다더니 정말 용한 사람이었군. 우리는 결혼 운까지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 찐 이다. 진짜 대박이야 대박’ B도 나도 흥분하며 손뼉을 쳤다. 분명 맞아 떨어지는 것들이 꽤 있었다. 그날 집에 돌아와서야 알았다. 내 기분이 바닥을 친다는 것을. 해리포터 마지막 시리즈의 반전을 들었을 때 그때 그 기분과 비슷한 결의 기분 나쁨이었다.
마음을 먹고 나서도 딱 한 번 운세를 봤는데. 썩 좋지 않은 기억의 타로점이었다. 대학가에 위치한 곳으로, 노상으로 시작해서 건물까지 매입했다는 전설의 타로 아줌마. 타로도 보는데 관상도 조금 사주도 조금 아무튼 조금씩 조금씩 다 할 줄 아는 만능 점성술사. ‘그러니까 좀 같이 가주라 응? 재미로 보는 거야 재미’ 취업 준비로 심신이 지쳐있었던 C는 그 타로 가게가 얼마나 유명하고 얼마나 대단한지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한 번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또 긴 취업 준비 기간이 얼마나 인간의 심신 미약을 불러일으키는지 알았기에 그녀와 동행하기로 했다. 내 점괘 결과는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는데, 문제는 함께한 취준생 친구였다. 재능이 없다는 둥, 남편 돈만 받아먹고 살 거라는 둥 악담을 들어야 했다. 아, 나한테도 지금까지의 인생이 먹구름이었다, 남자 사주다, 그래서 남자 기를 말릴 거라는 등등 그 외 한참 구시대적인 내용도 있었는데 그냥 흘려들었다. 유일하게 좋았던 게 하나 있었는데, 친구와 내 궁합이 너무 좋다는 것이었다. 옆에서 누가 악담을 퍼붓지 않아도 충분히 힘든 시기를 겪을 친구는 당연히 그날 내내 우울해했고, 꽤 오래 힘들어 했다. 그 우울함이 충분히 이해됐기에, 나도 마음이 무거웠다. 타로가 뭐라고 점비를 내기위해 급하게 뽑은 현금이 생각나 배알이 꼴렸다. 다행히 친구는 그해 말에 원하던 회사에 떡 붙었다. 그리고 친구궁합이 최고라고 했던 점괘가 무색하게 우린 연이 끊겼다. 거의 생의 첫 절교가 그 친구였다. 자 아주머니 이제 나와서 한마디 해주시죠. 너무 단언하셨잖아요?
점이든, 사주 철학이든 그 무엇이든, 또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 운세를 보고 돌아오는 내 발걸음은 언제나 무거웠다. 이걸 재미로 본다니. 전혀 재미없는걸. 나의 삶에 단 한 걸음도 들어온 적 없는 사람들이 나와 대화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내 인생에 대해 30분 안으로 축약해서 말해주는 건 정말 별로다. 그들의 혀끝에 내 인생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거 같고 그래서 자연스레 공손해지는 내 모습도 정말 별로다.
’진짜 안 볼래? 진짜 용한데’
‘어 난 안 볼래’
다 먹은 맥주캔을 구긴 A가 다시 한번 물었다. 한 달 전에 예약해야 하는 요~옹한 곳이란다. 재미로라도 한번 보라는데 무슨 한순간 재미를 위해 한 달 전부터 예약까지 하니. 그 대신 앉은 자리에서 인터넷 운세를 봤다. 3분 만에 본 인터넷 운세에선 올해는 금전운이 나쁘지 않고 주변 사람들한테 잘해야 하며 나태해지기 쉬우니 성실해야 한단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주변 사람들을 더 사랑하고, 성실히 살아야지. 나는 딱 그까지의 운세만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