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으려 해도 떠나가 버리는
이별은 늘 슬프다. 특히나 그게 양쪽의 일치로 이뤄진 게 아닌, 한쪽의 일방적인 선택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는 최선을 다해 붙잡으려고 떠나보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세상의 이치와 법칙은 나 개인의 노력으로 바꾸기엔 한계점 또한 명백하다.
이달은 나를 돌볼 여유도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이 여러 가지로 엉켜 있어 풀어내는 데 급급한 시기다. 10월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를 만나도 온전히 집중할 수 없음이, 마음 터놓고 대화를 이끌어가기 어려움이 괴롭다. 폭풍이 휘몰아친 뒤에도 내가 살아있다면 아주 잠시라도 훌쩍 떠날 기회를 주기로 결심했다.
이번 명절에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며 많은 것들을 맞이하고, 때로는 작별을 고하기도 한다. 돈·사람·환경 등 대상은 다양하다. 누가 이번에 결혼을 했니, 집을 샀니 등 부럽게 들리는 소식이 있다. 물론 반대도 존재한다. 오랜 친구와 인연을 끊었다는 얘기도 있고, 투자를 잘못 해 큰돈을 잃었다는 얘기도 있고, 세상과 이별했다는 얘기도 있고…
명절이라는 게 이제 옛날처럼 전통성을 지키는 곳은 많이 줄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을 모으기에 좋은 역할을 한다. 각자 일상을 살던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익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나는 여전히 명절이 되면 가족과 동네 친구와 대학 동기를 만난다. 그 자리에서 듣는 이야기는 친근한 이들의 입에서 나옴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새삼스러운 면모를 품고 있다.
그런 가운데 그 이야기들 속에서 느껴지는 공통적인 정서라고 하면, 은근한 옛정의 그리움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때는 자주 뭉쳐 다녔는데, 이제는 이렇게 명절에 얼굴이나 한 번 보면 다행이네. 그때는 걱정 한 톨 없었는데, 이제는 하루하루가 걱정이네. 그때는 내 생각을 이해해 주지 않는 게 야속했는데, 그게 아님을 깨닫는 데 너무 시간이 많이 흘렀네.
흘러가는 시간, 돌아오지 않는 순간. 의식적으로는 무의식적으로든 그렇게 안녕을 말하는 시간. 머릿속의 생각, 마음속의 정서, 또는 기록과 저장을 통해, 떠나는 그때를 무의미하지 않게 하기 위해 애쓴다. 가장 이상적이고 현명한 형태로 남겨두는 방법은 여전히 내겐 어려운 문제다. 9월의 흐름은 야속하기만 했다. 마치 폭풍전야처럼 고요하게, 순식간에 사라졌다. 부디 10월은 좀 더 깊고 많은 기쁨과 만족이 잔존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