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얼마 안됐을 무렵이었다.
우리 엄마는 대체적으로 내게 무관심한 편이시긴 하지만 그래도 시집살이 하는 딸내미가 걱정되셨는지
시어머니께 몇 번 뇌물을 보내셨다.
바닷가 지역분 답게 자연산 말린 우럭, 꽃게, 말린 민어, 봄 쭈꾸미 등 대체적으로 건어물이나 해산물을 보내셨다.
나는 어릴때 그런게 귀한 줄 모르고 친구 엄마에게 꽃게나 말린 우럭을 선물하는 엄마가 창피했다.
스팸이나 소고기 같은게 훨씬 좋은 선물 인줄 알았다. 그런데 커서보니 말린 자연산 우럭이나 꽃게가 꽤 비싼 선물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도 그럴것이 외갓집 가면 맨날 꽃게만 먹었다. 쪄서 먹거나, 게장으로 먹거나, 라면에 넣어 먹었다. 매 끼니마다 꽃게만 먹으니 나중에는 꽃게 발라 먹는게 귀찮아서
차라리 새우가 더 맛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참 배부른 투정이었다.
우리 시어머니도 부모님이 바닷가 분이라고 했다. 시외조부모님들께서 섬에서 사시다가 자식들을 교육시키고자 뭍으로 나오셨는데, 뭍으로 나오셨어도
바다를 기반으로 사업을 하셨다고 한다. 예컨대 꽃게나 생선을 가득 실은 배가 들어오면 시외할아버지(?)는 생물들을 도매로 통째로 사들여 파셨다고 한다.
정확한 개념은 잘 모르겠지만, 요점은 시어머니가 해산물을 시식하는데 있어선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시어머니는 친정 엄마가 보내시는 해산물에 있어서 꽤나 깐깐한 척을 하셨다.
한번은 친정엄마가 가을 꽃게를 보내셨는데, 택배로 오다보니 꽃게들이 얼음에 진창 빠져있어도 다 죽어서 와버렸다. 다행히 상하지는 않았다.
우리 가족은 그 꽃게를 쪄먹었다. 넉넉히 보내주신 덕분에 한 사람 당 세네마리는 먹은것 같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꽃게를 먹으며 말씀하셨다.
“에휴, 내가 인천에 있었으면 연안부두가서 지금쯤 활꽃게를 몇 번이나 떼다 먹었을텐데....”
음...그럼 인천으로 가시지...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또 한번은 엄마가 말린 자연산 우럭을 보내줬다. 외할머니가 뱃사람이 직접 배에서 말린걸 사다가 보내신거라고 했다.
시어머니는 말린 자연산 우럭이란 말에 눈이 번쩍 하셨다. 워낙 좋아하시는 식재료였나보다. 이번만큼은 시어머니가 직접 조리를 하셨다.
쌀뜨물에 말린 우럭을 보글 보글 끓이셨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한술 뜨시자마자 하시는 말씀이
“아우-짜! 세상에 너무 짜다!”
그야...해풍에 말린거니까요...그리고 원래 생선 말릴때 소금도 뿌리지 않나요?
나는 엄마에게 시어머니의 이런 투정을 그대로 일러바쳤다. 너무 속상해서 엄마가 귀한거라고 보내셔봐야 별로 고마운줄 모르시니 앞으로 이런거 보내지 마시라고까지 했다.
그런데 엄마는 기분 나빠하시기는 커녕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휴...꽃게가 죽은거라 안좋아하시는구나. 다음부터는 꼭 살려서 보내야 겠다.”
딸가진 죄인이란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