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살이 개집살이 21
흐규규구정
구정 연휴가 시작되니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바야흐로 내가 시집 와서 처음 맞이하는 구정날이었다.
시댁에 딱히 제사라고 하는 것도 없고, 간단히 추도예배만 보는 식이라 음식도 거창하게 하는 편은 아니다.
나는 그게 더 낯설었다. 할머니랑 살아왔던지라. 옛날분이었던 할머니는 약식, 식혜도 집에서 하시고
할아버지와 아빠가 녹두전을 좋아한다고, 명절마다 녹두전을 수십장씩 부치셨다. 그외의 전과 찌개, 떡 등은 두 말할것도 없다.
초가삼간에 살지라도 재상댁 잔칫상처럼 차려온셈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시댁에 명절날 명절 음식이 없는게 아쉬웠다.
나는 자처해서 식혜를 하고 꼬치전과 녹두전을 부쳤다. 바보 같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내가 먹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게다가 친정에서 하던거에 비해 규모가 작고, 신랑과 같이 하니 별로 힘들지도 않았다.
시어머니는 갈비랑 무국, 나물만 만드시고 안방에서 티비를 보며 쉬셨다. 나도 전만 부치고 신랑과 놀거나 외출을 했다.
다소 간단하면서도 조용한 연휴날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구정 당일.
우리 가족은 음식을 모아놓고 추도 예배 준비를 했다. 시어머니가 기도를 주도하셨는데, 시어머니가 갑자기 기도를 하시다 우셨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기도하느라 감고 있던 눈 한쪽을 슬며시 뜨며 시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시어머니의 뺨에는 진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매번 명절을 쓸쓸하게 보내시다가 새 사람이 들어오니 감격에 겨우신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신랑과 단둘이 장을 보고, 모자 둘이 쓸쓸하게 기도를 해왔을 모습이 상상됐다.
엉성하게 모질었던 나는 그 눈물에 금세 짠한 마음이 들었다. 시아버지가 신랑이 아주 어렸을때 돌아가셨으니. 이 집 식구들의 쓸쓸한 명절은 꽤 오래동안 이어져왔던 셈이었다.
저렇게 감수성이 풍부하시면서 왜 그렇게 평소에는 깐깐징어처럼 구신건지....나는 속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시어머니의 그런 여린 마음을 보듬어 주고 싶었다.
눈물로 젖은 흐규규한 구정 당일이었다. 그리고 곧 시누이네가 올때가 되었는데 시어머니가 대뜸 시누이네가 오면 먹인답시고 내게 말했다.
“리사야! 저번에 해준 양파 올라간 연어 초밥 있지?! 그것 좀 해줘!”
그래~ 이래야 우리 시어머니지~~
난 처음으로 우는 시어머니보다는 주책맞은 시어머니가 더 발랄해보여서 좋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