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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사심슨 May 07. 2020

가정의 달

시집살이 개집살이 29

결혼을 하고 가정의 달을 맞이하니...결혼전보다 양가 집안 어른들을 챙기는 것에 있어서 몇 배의 노력이 드는 것 같다.

결혼전부터 잘 챙겼으면 좋겠지만 철부지 자식인지라, 상투를 올리고 나서야 의무감이 생기는건 어쩔수 없나보다.

물론,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이러한 의무감을 강조하진 않는다. 요즘 같은 시기에 대리효도가 왠말인가.

그나마 하는건 양가 부모님들께 소소한 용돈을 드리고, 같이 맛있는 밥을 먹는 정도다.


어버이 날을 앞두고 있자니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때는 상견례 날이었다.


나는 어릴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다. 지독한 성격차이로 이혼하신터라 우리 부모님은 상견례도 따로 하기를 원하셨다.

딸내미 상견례 한번쯤 참아주면 어때서 그걸 못 참으시나 싶기도 했지만, 부모님에게 억지로 강요하는 것 역시 내 이기심이었기에

빠르게 체념하고, 시어머니에게 상견례를 두 번 해주실수 있는지 여쭤봤다.


시어머니는 생각보다 쿨하게 그러자고 하셨다. 혹시 뒤에서 내 가정사를 흉보시면 어쩌나 싶기도 했지만...

이왕 가족이 되기로 한거, 이런거 가지고 흉을 보는 집이라면 나도 아쉬울꺼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첫 번째 상견례는 친정 엄마와의 상견례였다.

친정 엄마는 시골에 계신다. 그래서 나, 신랑, 시어머니 이렇게 셋이서 친정 엄마가 있는 시골로 내려갔다.

친정 엄마의 대해서도 여러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은데......이번 편에서 아주 간략히 소개하자면

정말정말 독특하신분이다. 자기 세계가 확실하시고(고집이 세단 뜻이다.) 순수하시다(세상 물정을 잘 모르신다.)


게다가 아들 사랑도 남다른신 분인지라....아들 사랑 남다른 친정엄마와 시어머니가 만나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가

두렵고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만난 두 어머님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다는 상투적인 말과 함께 친정 엄마의 아들 자랑 랩배틀이 시작됐다.


“우리 인성이는 태몽부터가 남달랐는데요. 글쎄 커다란 황금 구렁이가 저희 집 마당에 똬리를 틀고 저를 쳐다보는거에요.”


음...아무도 안물어봤는데....저 얘기를 하시는 이유를 설명해주실분?

당체가...딸 상견례 자리에서 아들 자랑을 하시는 심보는 뭐란 말인가...

나는 민망함에 고개를 들수 없었다. 그렇다고 예비 시어머니가 있는 자리에서 그만 좀 하시라고 엄마를 면박줄 용기는 더더욱 나지 않았다.


아니지? 시어머니도 분명 자식 자랑을 어마어마하게 하실테니까 분명히 도진개진 일꺼야. 너무 민망해할 필요 없어!

나는 스스로를 이렇게 위로했다. 하지만 이게 왠걸.


“어머, 그렇군요. 그래서 리사 동생이 그렇게 준수한가봐요.”


내 예상과는 다르게 시어머니는 친정엄마의 얘기를 무척 공손히, 그리고 집중해서 들으셨다.

친정엄마가 외갓집 식구들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모두 자랑하는데도 전혀 지겨워하는 기색이 없으셨다.


시어머니의 그런 반응은 나를 더 송구스럽게 만들었다.

종내에는 내가 엄마에게 카톡으로 ‘엄마, 자랑 좀 그만해!’라고 보내게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시어머니가 혹여 참았던 가식을 터뜨리지 않으실까 걱정했지만, 시어머니는 시골 경치가 아주 좋다.

어머니가 준비한 음식이 참 맛있었다는 식의 칭찬만 반복하실 뿐이었다.


두번째 상견례는 친정 아빠와의 상견례였다.

나는 친정 엄마보다는 친정 아빠와 유대감을 가지며 컸다.

그래서 지금도 부모님을 챙기게 되면 친정 아빠를 좀더 챙기게 된다.


아빠와의 상견례날은 한정식 집에서 이뤄졌는데, 그날 반찬 중 삼색전이 있었다.

아빠는 평소에도 전을 좋아라 하셔서 나는 전을 아빠 앞으로 갖다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상견례 자리다보니...

그런 행동이 이기적으로 보이진 않을까 하고, 소심한 갈등을 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전이 담긴 접시를 들어 친정 아빠 앞으로 갖다놔드렸다.


내가 예전에 지나가는 말로 친정 아빠는 녹두전이나 동태전 등을 좋아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그걸 기억하셨던 모양이었다.

나는 내심 시어머니에게 고마웠다. 그날, 아빠는 전을 비롯한 나머지 음식도 맛있게 드셨고, 시어머니와의 상견례도 아주 훈훈하게 끝났다.


지금도 아주 간혹, 어른들이 함께 만나 식사를 하는 날이면 시어머니는 전 반찬은 친정 아빠 앞으로 놔주신다.


이러한 인상들 덕분인지....가끔 내가 시어머니 문제로 힘들다고 푸념할때면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말한다.


“네가 잘못 느낀거겠지.”


나는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양가 어른들 만나는 자리를 ‘학부모 참관일’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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