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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규민 Sep 06. 2021

잡다한 이야기1

직업에 귀천이 없다 했던가?

하늘이 가을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높디높다. 뭐든 다 덮을 듯한 하늘 이불이 좋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 했던가? 진짜 그런 줄 알았다. 멋진 말이고 훌륭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덩달아 그렇게 말했었다. 직업이 무슨 상관이냐고 적성에 맞고 하고 싶은 일 하면 된다고... 거짓말이다.

가슴에 손을 올리고 생각해보라 과연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잡(job) 다한 이야기

몇 해 전 관악구에서 몇 년을 살았었다. 가끔 볼일이 있어 가면 구두 수선집이 있던 자리를 지나쳐본다. 이젠 없어져 기억만 남아있다. 구두를 자주 신던 시절이어서 굽갈이를 자주 했었다. 지하철과 가까웠고 무엇보다 아저씨 솜씨가 좋았다. 다른 곳에서 굽갈이를 하면 오래가지도 않았고 발이 편하지 않았다. 여름이었다. 한여름 구두 수선방은 선풍기 한대로 버티기엔 힘든 공간이었다. 손톤은 구두약으로 까맣게 되었고 그 손으로 땀이라도 닦은 때는 여지없이 얼굴엔 그림이 그려졌었다. 그래도 환히 웃는 하얀 이가 시원했던 구둣방 아저씨. 점심시간에 구두를 찾으러 갔다.

"점심 드셨어요?"

"아니 아직요 찾으러 온다니 하던 거 하고 먹어야지요~."

"콩국수 드실래요? 저도 아직 안 먹었는데..."

근처 식당에 콩국수 배달을 시켜놓고 뜨거운 구두방에서 사는 얘기를 나눴다. 아저씨 손은 쉼 없이 구두약을 바르고 닦으며 가족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집사람은 식당에 다닌다며 안쓰러워했다. 아이들 둘은 잘 자라서 직장 다니며 이일을 그만두라고 한다며 살짝 입가에 미소가 보이기도 했다. 처음엔 사업을 하다가 부도나고 할 일이 없어 이일 저일 전전하다가 배운 기술이 구두수선일이 었다고. 또래 친구들 보면 이제야 정년퇴직하고 할 일 없어하는 거 보면 기술 배우기 잘했다고. 친구들이 부러워한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난 그저 들으며 추임새만 넣고 있었다. 아저씨 까만 손이 멋져 보였다.

동네어귀에 쉽게 보이던 구두방

콩국수가 도착했다. 근처 식당이라 커다란 쟁반을 들고 온 이모는 나를 힐끔 쳐다봤다. 아저씨는 어느새 그 모습을 보고 한마디 하셨다.

"가끔 바쁘면 배달시키는데 오늘은 두 그릇이기도 하고 손님이 주문했으니 이상했나 보네요~ 하긴 나도 놀랐는데..."

"뭐가 이상해요?"

"구두방에서 같이 점심 먹자는 사람이 처음이라서요 여기서 누가 먹으려 해요..."

"아저씨도 참~여기서 먹으면 어때서요?

국수 불기 전에 어서 드세요~ 맛있겠네요"

바지에 손을 쓱쓱 문지르고 아저씨는 드시기 시작했다. 그날 먹은 콩국수 맛은 지금도 기억난다. 구두약 냄새가 많이 났었고 지나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뭣이 중헌데?

구두방에서 콩국수 먹은 일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구두를 보면 사람들의 직업, 성격도 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때는 재미있다고만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얼마나 많은 구두를 수선하고 닦았을지 짐작이 간다. 손님을 생각해서 재료를 좋은 것으로 쓴다며 나름 철학을 담아 일하는 모습이 훌륭해 보였다.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해서 구두수선일이 천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보는 시선들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말만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 말고 진심으로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직업인으로 봐주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하는 우리는 각자의 직업 관점에서 보는 귀하고 천함의 기준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상위 1%의 직장인은 그들의 직업이 귀하다 생각할 것이고 천하다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나름 그들의 세계에서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직업의 귀천이 있다는 것인가? 없다는 것인가?


그 뒤로도 구두방에서 구두약의 냄새와 함께 밥을 먹었다. 어디서든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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