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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Mar 06. 2021

23. 운동

정처 없이 달리기

 보다시피 오늘 내 글의 주인공은 운동이다. 이제까지의 내 삶에 몇 번 자리하지 않은 귀한 손님이라 멋들어진 문장의 제목을 고심해봤지만, 도무지 멋지게 말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그냥 솔직하게 조촐한 제목을 지어봤다. 미적지근한 것이 그다지 내 운동의 온도를 닮진 않았지만 가장 직관적으로 내 운동을 설명하는 부제를 참고해줬으면 좋겠다.


 운동하세요. 이 말을 안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 운동이 몸에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일상에 운동을 초대하지 않는 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도 들고 몸도 지치는 시간을 굳이 마련하기엔 요즘 사람들이 여간 바쁜 삶을 사는 게 아니다. 제시간에 맞춰 끝내야 하는 것들은 늘어나는데 체력과 기운은 반대로 줄어드는 처절한 현대인들에게 운동이라는 처방은 꽤나 혹독한 법이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 코로나로 인한 등교 불가로 근근이 운동량을 메꿔주던 체육시간이 사라진 것이 큰 타격을 입혔다. 앉아있는 시간은 배로 늘었는데 제대로 된 운동은커녕 걷는 시간조차 없었으니 몸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게 1년을 지냈다. 밤샘 공부를 하며 주워 먹은 주전부리와 독서실과 학원을 오가며 때운 편의점 음식들, 종일 앉아있다 차를 타고 귀가해 잠드는 습관까지, 돌이켜보면 몸에 안 좋은 것으로 가득 찬 생활이었다. 이러다 정말 펜만 겨우 들 수 있는 몸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솟아오를 때 즈음, 입시가 끝났다.


 내가 속은 여러 말들 중 하나지만, 대학에 합격한다고 몸이 좋아진다는 건 정말 희대의 거짓말이 아닐까 싶다. 정확히는 '그때 되면 다 괜찮아져'라는 거짓말의 연장이었으나 그걸 따져봤자 속았다는 건 달라지지 않으니 굳이 따지진 않겠다. 사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건 아니었지만, 약간의 믿음은 있었다. 이 수험생활이 끝나면 더 좋은 컨디션과 생활 습관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여기엔 중요한 전제가 빠졌다는 오류가 있다.


 (내가 열심히 움직이고 노력하면) 좋은 컨디션과 생활 습관을 가질 수 있어!


 당연한 것이지만 너무 당연해서 잠시 잊어버린 조건이었다. 다행히 입시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이를 기억해냈지만 그뿐이었다. 고3 기간 동안 자지 못했던 걸 돌려받기라도 하려는 듯 수면 패턴은 깡그리 무시한 채 늘어져라 잠을 잤고, 그렇지 않은 시간은 누워서 핸드폰을 하거나 앉아서 글을 썼다. 공부하느라 앉아있던 시간이 누워있는 시간으로 환원되었을 뿐이었다. 꺾인 체력은 가속해서 내리막길을 굴렀고, 결국 내가 서울에 올라왔을 때 즈음엔 바닥을 찍었다.


 그리고 서울에 왔다. 이미 여러 번 언급했다시피 지금은 나름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 하루 동안 시간이 너무 가지 않는다는 이상한 이유로 시작한 운동이지만, 지금은 몸과 마음의 체력을 기르자는 목표로 이어가는 중이다.


 내 운동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다. 고등학교 때의 체육복에 검은 반팔을 입고 마스크를 낀 채 엘리베이터를 타는 게 끝이다. 지하의 운동시설에 닿으면 이어폰으로 노래를 틀고,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한 뒤 운동을 시작한다.


 40분 간 트레이드밀 위에서 숨이 터져라 뛰고 걷기를 반복하고, 내려오고 나서는 팔 운동과 스트레칭을 한 뒤 짧게 무릎을 댄 플랭크를 하고 끝낸다. 기분과 그날의 몸상태에 따라 조절하긴 하지만, 기본값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선 조촐하게 보일 수 있는 수준이지만 나의 최선이다. 나는 이 운동을 하며 한없이 뜨거워졌다가 식기를 반복하고, 그 온도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데 확신을 갖고 있다.


 운동은 나를 위한 일 중에서 가장 개인적인 일 중 하나일 것 같다.  내가 운동을 한다고 해서 남이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심지어는 나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오늘 땀 흘린 만큼 내일의 내가 덜 힘들거나 좋은 몸을 가지진 않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다르겠지만, 오늘 운동을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오늘의 나뿐이다. 다만 그 오늘에 어제보다 나은 내가 살게 하기 위해 나는 가능한 한 오래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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