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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Dec 17. 2022

마흔 하나, 초등학교에 다시 간다면

1호야, 내가 못다 이룬 공부의 여한을 네게 풀지 않겠다 다짐해본다.

2022년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아이를 자유롭게 키우고 싶었다, 는 건 아니고

별 생각도 없는데다 돈도 없었기에 

6~7살 무렵 하루 한장씩 떼어서 하는 총 10권으로 이루어진 한글떼기로 한글을 익혀주는 것만으로

어미로서의 소임을 다했다, 며 탱자탱자 놀고 있었다. 


전업으로 아이 둘을 키우고 있지만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만 하기에는

아직은 뜨거웠기에(라고 쓰고, 내 인생에 대한 그 뭔가... 돈을 벌고 싶은 욕망이 사그라들지 않았기에) 여기저기 찝적거리느라 바쁘기도 했다.


그 굳은 의지의 표현으로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했고

머리털 나고 그렇게 공부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엄마의 말로는 20년 전에 그리 공부했으면 하바드도 갔겠다 얘)

 코로나 후유증으로 빌빌거리던 8월 중순부터 박터지게 해봤지만

또 떨어졌다.

카. 마흔이 넘어도 실패는 쓰리다.

힘 좋던 스무살때는 화도 났지만,

나이들어 스스로 만든 실패는 더 쓰리기만 하다. 


메타인지가 폭발하는 시기라고 했다. 40대는

그래서일까. 

뭔가 제대로 해낸 것 하나 없는 내 인생을 돌아보니

나는 끈기만 있었다.

노력이 빠진 단순히 버티기만 하는 끈기는

그 줄기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게.으.름 이라는 튼실한 뿌리와 닿게 된다. 


그렇다. 나는 40년 넘은 게으름의 순수한 결정체이다.

눈부시다.

들어가자마자 때려치고 싶었던 첫 직장은

처음에는 1년만 버티자, 로 버텼고

두번째 직장은 평생 뼈를 묻고 싶었지만

그쪽에서 원하지 않았기에 까였다.


그 사이사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요렇게도 조렇게도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며 방편을 찾아 헤매었지만.

그 역시 요식행위였던 것일까.

 

20대에는 계획을 짜는 선수였지만, 

그를 지키지 못했고

30대에는 계획조차 짜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40대가 되었다. 


그런 내가 아들에게

계획을 짜서 공부하라고 한다. 

고작 8살 먹은 어린 아이에게.

왜냐,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해서.


나처럼 어영부영 생각날때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날 때만 계획을 짜는 것이 아니라. 

그냥 원래부터,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리 해야하는 것처럼

단순한 계획을 짜고 그를 실행하는 것을 

숨쉬듯, 당연하게 하고 살았으면 한다. 


학창시절 가장 아쉬운 점은

부모님이 과외를 못시켜준것도

학원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 것도 아니다.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공부를 조금이라도 잘했던 그 어릴때

그때 뭔가 학습 습관이 잡혀있었더라면...

아니다. 마흔이 넘어서까지 부모탓을 하다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주어진 시간에 공부를 제대로 안한 것도 나,

일을 할때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것도 나, 

마흔 넘어서도 영어에 두손 두발 다 잡혀있는 것도 나.

다 나다.


사실, 아들아

니 공부가 문제가 아니라

너보다 훨씬 나이는 많은데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네 어미가 문제다. 

정말 크나큰 문제다. 니가 걱정하는 지구의 안전, 환경문제보다 더 심각하단다.

어쩌면 나는 그걸 너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매일 매일 너를 붙잡고 공부를 시키려고 애쓰는 것도 같다. 


내가 못 살아본 인생을

너를 통해 살고 싶은 건 아닐까, 라는 무시무시한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네 인생은 너의 것이고

내 인생은 나의 것이지.

나는 내 영어를 하겠다. 

니 영어는 네가 알아서 해라, 

하면 얼마나 좋겠니. 

내가 영어를 잘해서 너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지만

내가 너보다 잘하는 건 알파벳을 모두 외웠다 정도이니

우리 같이 잘해보자. 


수학은 내가 좋아했던 과목이고 지금도 니 문제지 답지 보면 알 수 있다. 

다행이다. 헌데, 내가 언제까지 답지를 이해할 지는 나도 모르겠구나. 


한가지 분명한 건, 

살아가면서 하기 싫어도 해야하는 일이 있어. 

그게 공부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왜냐면, 공부 말고도 진짜 많거든. 

니가 좋아하는 텔레비전, 닌텐도, 띠부실 등 몇몇 빼고는 

아마 거의 대부분이 그럴거야. 그 속에서 니가 좋아하는 걸 찾는 건 정말로 중요해.

그래서 더 중요할지도 몰라. 

하기 싫은 것들이 대부분인 이 세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게 하나라도 있다면

얼마나 든든하겠니.


하루 세끼만 먹자는 스스로와의 약속도 못지켜

올록볼록한 마흔 넘은 어른이 너에게 자꾸 약속을 말하는 것이 부끄럽구나. 

그래, 나도 밥 세끼만 먹겠다고 약속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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