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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용희 Jun 19. 2018

인정에 대한 용희만의 해석과 탐구

인정    


어느 날 지하철을 탔다. 노약자석의 건너편에 서있었고 노약자석은 다 찬 상태였다. 그리고 다음 역에 한 어르신이 지하철에 타셨다. 그 어르신은 노약자석을 보시고 자리가 없자 일반석에 자리하셨다. 그리고 또 다음 역에서 노약자석에 앉아 계시던 분들이 다 내리셨다.     

그리고 아까 전역에 타셨던 어르신이 노약자석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불연 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어르신은 사실 일반석에 앉으셔도 되지만 굳이 노약자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것은 마치 그 어르신은 자신을 노인으로 인정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일반석에 앉을 사람들에 대한 배려처럼 느껴져 마음 한편이 따듯해졌다. 하지만 자신이 노인임을 인정하는 것. 그것은 어떠한 느낌일까?      

이번엔 인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한다.    


인정의 사전적 의미는 ‘확실히 그렇다고 여김.’ 이라 명시 되어있다. 인정은 본인이 스스로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개인적으로 생각 했을 때 인정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멋스러운 일이 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스스로 그것을 판단하고 존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TV에서 한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 강연자는 펜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분은 전통 펜싱을 배운 적이 있는데 전통펜싱은 상당히 멋스러운 스포츠임을 느낄 수가 있었다.    

현재에 펜싱은 점수를 메기는 방식인데 공격이 성공하면 입고 있는 보호 장비에 입력이 되어 점수가 매겨지는 방식이다. 헌데 전통적인 펜싱은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승패가 가린다.    

과거에는 현재처럼 첨단 장비가 없었으므로 펜싱같이 급작스럽게 점수가 나는 스포츠에서 점수를 매기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헌데 전통적인 펜싱은 승패를 가릴 때 공격을 당한 사람이 인정을 하는 방식으로 점수를 매긴다고 한다.     

상당히 멋스럽다. 펜싱은 단순하게 이기기 위해서 하는 스포츠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 같다. 스스로의 인정. 그걸 통한 발전을 하는 것이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스스로 인정을 하는 것들이 있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이 있다.     


우리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인정하는 부분은 내가 감당 할 수 있는 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신이 소심하다는 것을 인정 한다고 치자. 그는 여러 경험과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자신의 소심함을 느꼈고 그것을 받아 드린거다. 나는 소심한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가 감당 할 수 있기에 그렇게 인정을 하게 된 것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자신의 소심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아마 사회적인 분위기가 소심한 사람에 대해서 속이 좁다고 생각하고 약한 사람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본인의 소심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부분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떠한 상황이 생길까? 본인의 소심함은 본인이 인정을 하지 않더라도 발현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사람이 스스로 자신이 소심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소심함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자신의 소심함을 숨기기 위해서 무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인정을 하면 편해지는 것이 인정을 하지 않아 불편해지는 것이다.     


인정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안에 대해서 안다는 것을 이야기 할 수 있고 또한 인정을 하는 부분의 성장 가능성을 이야기 할 수 있겠다.    

사실 앞서 펜싱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는데 본인의 패배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여기서 인정을 한다는 것은 지금의 상황을 받아 드린다는 것이고 또한 이러한 인정을 통하여 앞으로 한 단계 도약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 할 수 있겠다.    


인정을 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장점 그리고 단점 들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의 장점을 인정 한다는 것은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단점을 인정하는 것은 나를 그대로 받아들여 그것을 개선 하고자 하는 의지의 시작점으로 삼겠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인정을 한다는 것은 발전적인 상태라고 본다.    


하지만 우리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생기곤 한다. 이것은 자존심일수도 있고 고정관념일수도 있다.     

왜 인정하지 않는 것인가?     

어떤 예술가가 있다고 치자. 그는 평생을 자신의 작업을 하는 데에 모든 것을 쏟았다. 하지만 그를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믿었다. 언젠가는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 인정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놓지 않았다.    

헌데 사회는 그의 작품을 너무 낡은 방식이라고 이야기하고 너무 뻔한 이야기라고 하여 그의 작품을 인정해주지 않는 상황이었다.     

만약 여러분이 이러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신의 작품을 이어 갈 것인가? 아니면 사회가 요구하고 인정하는 작품을 할 것인가?    

정답은 없다. 하지만 비극은 있다.    

본인의 작품을 이어가는 쪽을 선택한다면 스스로의 만족과 인정을 유지하겠다는 만족감이 올 수 있겠지만 세상의 외면에 비참해 질 수도 있다.    

반대로 세상이 요구하는 작품을 한다면 이는 나의 작품이라 볼 수 없어 비참해 질 수도 있겠다.    

이때 무엇을 인정하고 받아드리느냐가 중요하다.    


전자의 경우 본인의 세계를 관철하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여 끊임없이 노력해 나감으로서 본연에 세계를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사회의 인정을 넘어서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사회의 요구에 맞추어 작품을 하여 사회의 인정을 끌어낼 수 있는데 그러한 사회의 인정에 만족한다면 그 또한 하나의 가치를 만드는 것으로 보여 진다.     

그래서 인정은 어떻게 하는지도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의 판단인 것이다.    

스스로가 판단 할 수 있는 인정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타인의 인정에 취해 그것에 맞춰가도 보면 쇼윈도 인생을 살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약 무언가를 선택해야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에 선택을 한다면 어느 정도 안전성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회적 인정이 나의 가치와 차이가 있다면 과연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것이다.    

전통 펜싱처럼 본인의 잘못을 인정 할 줄 알고 때로는 타인의 강점을 인정 할 줄 알음으로서 당신은 당신만의 안목이 생기게 되고 자연히 주체성 또한 따라 올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나만의 기준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기준이 정체되어 있지는 않았으면 한다. 정반합처럼 언제나 더 나은 기준을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     

나에 경우를 이야기 해보겠다.    

사실 나도 자존심이 굉장히 강한 편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내 자존심이 용납 하지 않는 것은 인정하지 않으려 했었다.     

나는 대학을 중퇴하였다. 어차피 순수미술을 할 생각이었기에 대학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대학이 다는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인정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의 중요한 스펙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을 느낀 후 사실 나는 중퇴 한 것을 후회하였다.     

사회의 인정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괴로운 것은 그저 나일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무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 역시 사회인이기에 사회의 인정이 분명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색깔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만약 내가 스스로 난 사회의 낙오자라고 인정하고 더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면 나는 어쩌면 망가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나의 현재 상황을 인정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현 상황을 타계하는 방향을 찾은 것이다. 인정으로 인한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인정을 한다는 것은 고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우리의 많은 것들을 인정하고 인정해줌으로서 서로의 가치를 상승시켜 주는 것이 사회의 순기능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모두를 아껴주고 인정 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인정편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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