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의 대가.
심연의 대가.
검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홀. 스트라이프는 거대한 석좌에 앉아 있었다. 그의 긴 그림자는 홀 중앙의 파라사이트를 감쌌고, 어둠의 실들이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왔다.
홀의 중심에는 파라사이트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몸은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그림자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스트라이프는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순간 그의 왼쪽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고, 떨림은 턱과 목으로 이어져 짧은 경련을 만들어냈다. 그의 손끝은 규칙 없이 들썩이며 어둠의 실이 그 손에서 춤추듯 일렁였다.
스트라이프: "파라사이트."
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하지만 단어의 끝이 짧게 끊겼고, 어깨가 한 번 들썩였다.
파라사이트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파라사이트: "미... 미스터 스트라이프님,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녀석이, 콩이 이렇게까지 저항할 줄은…"
스트라이프의 손끝에서 어둠이 뻗어나가 파라사이트의 몸을 휘감았다.
스트라이프: "최선이라… 최선을 다했다고? 너는 내 어둠을 흩어버리고, 나의 이름을 더럽혔다."
스트라이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긴 외투가 어둠 속에서 살아 움직이듯 퍼져나갔다. 그의 손끝에서 다시 어둠이 길게 뻗어나왔다.
스트라이프: "자비와 그의 일행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다. 그러나 네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했던 것은 자비도, 콩도 아니었다. 네가 두려워해야 했던 것은 이 어둠의 본질이었지."
그는 잠시 말을 멈추며 고개를 옆으로 두 번 짧게 튕겼다. 어깨가 한 번 들썩이며 틱 장애가 불규칙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스트라이프: "너는 어둠을 단순히 파괴로 보았다. 네가 실패한 이유는 그것이다."
파라사이트는 고개를 들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파라사이트: "그럼… 어둠이란 대체 무엇입니까? 미스터 스트라이프님, 저는 그저 당신의 뜻을 따르려고 했을 뿐인데…"
스트라이프는 코웃음을 치며 손끝에서 창을 만들어냈다.
스트라이프: "어둠은 단순히 빛의 반대가 아니다. 어둠은 세상의 모든 가능성을 담는 그릇이다. 빛은 단순하고 뻔하다. 그것은 표면만을 비출 뿐, 심연에 감춰진 진실은 드러내지 못한다."
그는 창을 한 손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스트라이프: "어둠은 모든 것을 삼킨다. 빛도, 고통도, 두려움도. 그리고 그것을 소화시켜 새로운 형태로 내놓는다. 어둠이란… 선택받은 자만이 다룰 수 있는 힘이다."
그는 고개를 짧게 끄덕이며, 옛 기억을 떠올리듯 잠시 눈을 감았다.
스트라이프: "더 비잉은 어둠을 거부했다. 그는 빛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는 실패했지. 빛은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어도, 그들을 바꿀 수는 없다."
그의 목소리는 잠시 낮아졌고, 어깨가 불규칙하게 움직였다.
스트라이프: "심연 속에 발을 담가본 적 없는 자는 어둠을 이해할 수 없다. 빛은 모든 것을 단순화한다. 그러나 어둠은 복잡함 속에서 진실을 발견하게 한다. 그것이 내가 더 비잉과 다르게 선택한 이유다."
파라사이트는 엎드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파라사이트: "미… 미스터 스트라이프님…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스트라이프는 그를 내려다보며 손끝으로 창을 들어 올렸다.
스트라이프: "너는 나의 어둠에 어울리지 않는다. 어둠은 그 자체로 선택이다. 그것은 진실을 맞이할 용기가 있는 자만이 다룰 수 있다."
그는 창을 내리쳤다. 어둠의 창이 파라사이트의 몸을 관통하자, 파라사이트의 형체가 점점 작은 그림자로 변해갔다.
홀은 다시 고요해졌다. 스트라이프는 석좌로 돌아와 천천히 앉았다. 어둠의 실이 그의 손끝에서 천천히 흘러내리며, 그의 떨리는 손가락과 함께 움직였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스트라이프: "어둠은 혼란이 아니다. 그것은 진실로 가는 길이다. 어둠은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단지 그것을 드러낼 뿐이다."
그는 먼 곳을 응시하며 혼잣말을 이어갔다.
스트라이프: "더 비잉, 네 빛은 강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었지. 언젠가, 너도 이 어둠을 이해할 날이 올 것이다. 그날, 너의 빛은 진정으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