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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핏 Jan 12. 2019

나는 동물 사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동물 사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어쩌면 치유의 시작은 내가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하는 것에서부터 가능해지는지 모른다. 나는 동물 사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피곤할 때 티브이를 틀어놓고 멍 때리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일본 드라마의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중국어로 예쁘게 말하는 목소리를 좋아한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급하게 먹는 것을, 잘 마른 면직물의 냄새를, 코코넛을, 외로운 사람에 관한 영화를, 그리고 기타 등등. 아무 이유 없이 좋은 것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상처의 시작 역시도 치유 못지않게 단순하다. 상처는 내가 좋아하던 것을 더 이상 순수하게 좋아할 수 없을 때 발생하는 것 같다. 나는 내게 너무나도 낭만적이게 느껴지던 것들 (예를 들어 영화)을 세세하게 알아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그것과 멀어지고 싶어 하는 나를 느꼈다. 영화를 공부하고 만들면서 나는 수많은 상처를 받았다. 사람에게 받는 상처가 대부분이었지만 화를 입은 것은 내 몸이요, 사라져 간 것은 영화에 대한 애정이었다.


 그리고 내가 순수하게 좋아하던 것들이 내 밥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리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글이 내게 그러했다. 글은 내게 신성한 것이었고 참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러나 본디 밥벌이의 수단이라는 것은 그다지 아름답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으니 간극이 너무 컸다. 

 그러므로 내가 불행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사랑하는 것을 신비하고 순수한 일정 영역 안에 남겨두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좋아하는 대상의 주변을 맴돌면서도 너무 가까이 가서 못 볼 꼴을 보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아름답게 유지하기 위함이다. 


 삶과 돈 버는 것이 구분되어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삶이 소중해지기 위해, 일에게 삶이 저당 잡혀서는 곤란하다. 내 삶이 삶 같아지기 위해서는 내 삶에게 일정한 여유를 건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과 사적 시간의 구분이 분명하게 있어야 한다. 


 자기 시간을 내기 어려울 만큼 일에 파묻혀 사는 사람에게 있어서 삶이란 일과 동의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와 반대인 사람일수록 삶과 일의 구분이 뚜렷하다. 삶을 사랑하기 위해서, 나는 일과 거리를 두며 살기를 주장하고 싶다. 요즈음 즐기면서 일을 한다거나 취미 생활과 일을 연결시켜서 하는 똑똑한 사람들도 많은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일과 삶을 접목시킬 만큼 단단한 사람이 못 되는 것 같다. 내게 있어서 일이란 늘 복잡한 것이고 삶은 단순할수록 이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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