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할 일을 하는 시간
아이들을 키울 때 '루틴'이 중요하다고 한다.
아이 셋을 키우는 사람에게는 열 가지 조언에 맞먹는 유용한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열 시 전에는 반드시 잠자리에 들기, 티비 보기 전에 삼십 분씩 책 읽기, 일요일 오전은 다 함께 도서관 가기'와 같은 일상적인 반복들은 확실히 육아를 덜 지치게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아무래도 학습 습관에 신경을 쓰게 된다. 저학년 때부터 시간을 정해두고 조금씩이라도 공부하는 버릇을 들여야, 고학년이 되어서 학습 습관 자리 잡기가 수월하다고 한다.
동의하는 편이다.
우리 집은 '저녁 8시부터 9시까지'의 한 시간을 정해두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공부하는 시간이야"라고 말하기보다 책 읽는 시간, 혹은 '각자 할 일 하는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실제로 부모인 나와 남편에게는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자고 나면 할 수 있었던 일들_수업연구라던가 수행평가 채점 등_을 아이들이 크면서 더 이상 잠드는 시간까지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하니 아이들을 재우다가 나도 잠들어버릴까 봐 초조한 마음으로 시계를 보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아이들은 공부를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
각자의 선택이다. 글자를 모르는 일곱 살 막내에게 책 읽기나 한글 공부를 권장해 보지만, 대체로 그림 그리기에 몰두한다. 그림을 선물할 거라며 여백에 편지를 적는 작업(?)이 한글 공부다.
남매가 함께 놀 때도 있는데 너무 시끄럽게 하는 건 주의를 준다. 다른 사람이 할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거나 멍 때리기도 한다.
"뭐 하지?" 하는 혼잣말을 뱉으며 서성대거나, 부모에게 묻기도 한다. 그러나 어차피 내가 열 가지를 제시하면 열 가지를 마다한다.
- 받아쓰기 연습했어? 영어책 읽을래?
진지하게 도와주는 척하다가,
- 엄마랑 뽀뽀하기는? 지금 할까?
하면 저도 엄마에게서 답 얻기를 포기한다.
하루아침에 자리잡지 않을뿐더러 꾸준히 하기도 쉽지 않다. 아직은 아이들이 어려서 어떤 모습으로 계속될지, 계속되기는 할지 장담할 수도 없다. 그러나 '공부하는 시간'이라고 일컬을 때 아이들이 느끼는 부담감과 답답함을 생각하면, 훨씬 오래갈 방법이다.
가족 문화가 별 거겠는가.
온 가족이 함께 지키는 생활의 규칙과 습관, 그것이 곧 우리 집의 문화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공부 루틴을 만들어주려 애쓰기보다,
내 삶이 규칙성과 자율성을 잃지 않도록 단정하게 살아가려 한다. 대단한 것을 하지 않지만, 각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일에 몰두하며 서로 곁에 있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어쩐지 조용히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마저 든다.
우리는 그 감각 속에서 충분히 만족스럽고, 충분히 행복하며, 함께 자라고 있다.
결과에 상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