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문학은 희랍어만큼 낯설고 아름다운 것
1.
은유작가의 글쓰기 수업 '메타포라 15기'를 신청했다.
안내 공지가 올라올 때마다 너무너무 참여하고 싶었지만 평일 중에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할 체력과 경제력이 부담이었다. 이번에는 감사하게도 나 같은 교통약자를 위해 줌으로 진행한다.
놓칠 수 없는 기회,
기회를 잡기 위해 무려 40만 원이라는 수강료를 결제했다.
혼자 읽기 힘든 책 8권을 사람들과 함께 읽을 수 있고,
내 글을 은유 작가님께 첨삭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전혀 비싸지 않지만, 그렇지만,
일대일 필라테스를 60만 원에 결제한 게 바로 엊그제다.
(세 번째 일대일 레슨, 덕분에 허리는 많이 좋아졌다:))
자고로 돈이란 꼭 필요할 때 써야 하는 것이며,
모아야 하는 것이며,
절제의 미덕이 빛나야 할 영역이거늘.
내 통장이 화수분도 아닌데 이렇게 펑펑 써도 될 것인가.
오늘 양산도서관에서 <해방의 밤>을 중심으로 강연해 주신 은유 작가님이 이런 문장을 보여주셨다.
나는 이 문장 앞에 '가난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도 추가해야 한다고 본다
2.
확실히 사치스러운 날들이다.
내가 읽은 책의 작가를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심지어 배우는 날들을 예전엔 상상할 수 없었다.
안녕 고래야가 있어서 멀리 가지 않고 작가님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요즘은 퇴근하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과 공부하는 시간이 아예 일상이 되었다.
오후에 양산도서관에서 은유 작가님의 강의를 들었던 수요일 저녁에는 장영은 선생님과 한강의 <희랍어 시간>을 공부했다.
여자는 왜 희랍어를 배울까요?
여러분은 왜 이 늦은 시간 문학을 공부하세요?
- 장영은
'교수님이 좋고 한강 작가가 좋아서요'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그러나 희랍어 시간의 여자가 쓴 문장처럼,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쓸모없는 고대의 언어를 공부하는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이야기는 쓸모없(어 보이)는 공부를 꼭 붙잡고 있는 나와도 닮아있었다.
소설 속 두 사람이 손바닥에 글씨를 그려 대화하는 장면을 쓰면서, 인간은 인간을 껴안아야 한다고, 그것이 인간을 살게 한다고 느꼈어요. 그러니까 인간에게 다른 인간이란, 어렵지만 껴안아야 하는 것, 자신을 뚫고 나가 껴안아야 하는 것이라고 <희랍어 시간>을 쓰면서 생각했어요.
-한강
나에게 문학이란 희랍어만큼 낯설고 아름다운 것이며,
타인과 함께 책을 읽고 쓰는 일은 손바닥에 글씨를 그려 소통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더디고 비효율적이며 노동에 가까운 일이 나를 살게 한다고 느낀다.
일요일밤의 고마카세,
장영은 교수님과 공부하는 한강 문학,
강석희 작가님과 함께하는 소설 쓰기.
피곤이 내려앉는 시간에 꾸역꾸역 책상 앞에 앉는 이유는 어렵지만 내가 껴안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를 뚫고 나가야만 껴안을 수 있는 일이,
문학 공부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움은 어려운 것이다.
아름다움은 고결한 것이다.
세 번역이 모두 그르지 않은 것은, 고대 희랍인들어케 아름다움과 어려움과 고결함이 아직 분절되지 않은 관념이었기 때문이다. 모국어에서 '빛'이 처음부터 밝음과 색채라는 두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희랍어 시간, 한강, 77쪽
한강의 소설을 인용하며 글을 쓸 때는
내가 쓰는 문장조차 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거의 베끼다시피 쓰는 것이니 그럴 만도 하지.)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문장을 부리는 듯한 느낌,
그건 '가난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