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을 처리해야 해서 학교에 가니,
교무실에는 교감선생님과 주무관님 두 분만 계셨다.
점심 무렵이라 짜장면을 시켜드시는데,
내 자리에서도 두 분의 말소리가 들렸다.
나이가 어린 주무관님 불편하실까 봐 일부러 화제를 이끌어가시는 교감선생님 마음이 느껴져서, 일하는 중간중간 나도 대화에 꼈다.
무슨 얘기를 하다가 그렇게 흘렀을까.
교감 선생님의 형제 이야기를 해주셨다.
형이 특출 나게 똑똑한 사람이라서, 어릴 때부터 집안에서 대우가 달랐다고 한다.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친척들에게 받는 용돈은 늘 압도적으로 차이가 났고, 교감선생님도 유학 간 도시에서 전교 1등 하는 수재였지만 그 정도로는 부모님께 주목받지 못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흔한 이야기였다.
나는 형제가 없어서 직접적인 차별의 경험이 없지만, 남편을 통해 서러움을 간접적으로 겪어 보았다.
"결혼한다고 시부모님 뵌 자리에서
시어머님이 형 이야기를 막 하시지 뭐예요.
나는 그 형의 동생이랑 결혼하는 건데!"
내가 제일 속상하고 서러웠던 대목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사범대에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부터였다.
물감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오토캐드 프로그램을 쓸 수 있는 맥 컴퓨터가 필요해서 꿈을 접으셨다고 한다.
가난한 시골에서 6남매 중 넷째니까,
꿈을 고집하기엔 여러모로 걸림돌이 많았던 것이다.
*그럼 왜 사범대로 가셨어요?
-그땐 공부 좀 하면 사범대 보내는 게 거의 유행이었지.
*그럼 왜 하필 물리과셨어요?
-선생님이 과 뭐 할래 하시길래, 아무 데나 써주시라고 했지. 그랬더니 형이 물리학과니까 물리로 하라더라고.
아.. 미술학도에게 물리과가 웬일.
*물리가.. 적성에 맞으셨어요..?
-아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정말 눈물이 쏟아질 만큼 속상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을 남에게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공부하고 밥벌이로 해온 삶은 어떤 것일까, 감히 짐작하지 못할 삶이었다.
세월이 선물한 연륜인지, 원망이나 후회도 없는 담담함이었다. 그래서 내가 더 서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교감 승진하는 것을 보셨더라면, 아버지가 좋아하지 않으셨을까 싶어요
또 어머니를 생각하면 예쁨 받은 기억이 많이 난다고, 정서적으로 부족했다는 생각은 안 든다고도 하셨다.
다만, '나도 잘하는데'라는 인정의 욕구가 어른이 되어서도 많이 남아있음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경우 없이 나서지 않으려고 조심하신다고 하셨다.
지금이라도 그림을 그리시면 안 되느냐는 내 말에, 가끔씩 그리신다고도 했다.
교감실에 앉아있는 선생님이 아니라,
그림 그리는 교감선생님,
잘 상상되지 않지만 내 상상력이 비루한 탓이다.
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다들 그렇게 살았어, 그런 삶도 있었지 하고 흘려듣기에는 너무나 간절하게 고유한 삶이 거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