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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시옷 Sep 14. 2024

나의 외할매 조효녀씨 이야기

일제강점기 즈음 태어나셨을 외할매는 이름마저 '효녀'였다. 이름 석 자에 자기 자신이 없다. '쓸모'를 기대하는 이름으로 외할매는 평생 사셨는데 증조부모님께서 그 기대를 충족하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외할매는 경남 마산의 회산다리 시장에서 김치 장사를 했던 사람이다. 큰 고무다라이에 여러 종류의 김치를 담아 손님을 기다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내가 아니라 실외에서 큰 평상 위에 고무다라이를 올려둔 것인데, 냉장고에 한번 넣지도 않고 그 김치들은 어떻게 손님들에게 팔려나갔는지 의문이다. 쉬어빠졌을텐데.

손님들이 김치가 짜다고 하면 "김치는 짜야지"

손님들이 싱겁다고 하면 "김치는 싱거워야지"며 김치는 팔려나갔다.

방학이면 하루 이틀 외할매 집에서 자고 오곤 했는데 시장 입구에서부터 뛰어가 할매~하고 부르면 환하게 웃으면서 맞아주시곤 했다. 뭘하고 놀았는지 잘 기억 나지 않지만, 시장이 파할 때까지 옆에서 기다렸다가 외할매 손을 잡고 돌아온 기억이 난다.

어떤 날은 '내일이 제 생일이에요'하고 말했고, 부랴부랴 나물 몇 가지를 사다가 생일상을 차리느라 고생하셨는데 알고보니 내가 음력 생일을 잘못 기억하고 있었던 날도 있다.

무진장 덥던 어느 날은 시장 안의 옷 가게에서 예쁜 투피스 한 벌을 사주시기도 했다. 내 생일도 아데 왜 사주셨는지 모른 채 새 옷 입은 기분째졌다. 하얀 바탕에 군청색의 데이지꽃이 자잘하게 박혀있던 옷이었다고, 아직 기억한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간직하기 좋은 기억이다.




고혈압으로 인한 편마비였지만,

나중엔 치매도 있으셨다.

오줌 뉜 지 십분도 안돼서 왜 또 마렵다하시는지,

왜 자꾸 배가 고프다시는지,

우리 엄마 눈 붙이려 누운 지 겨우 오분도 안됐는데 왜 자꾸 부르시는지.

내가 옆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없을 때가 많았다. 특히 똥오줌은 80키로 가까운 할매를 요강에 앉혀야는데,

초등학생이었거나 중학생이었던 나는 그 정도 힘이 안됐다.

자꾸 엄마를 부르는 할매 옆에서

제발 그만 좀 부르라고, 대체 왜 그러냐고.

그러다가 답하고 화가 나서

할매를

때리기도

했다.

'내가 할매를 때린 걸 엄마는 알까?'

봐야 할 외할매 눈치 대엄마 눈치를 봤는데 그때 몰라서 이름 붙이지 못했던 감정의 이름이 '죄책감'이었다.

어린 손녀한테 손찌검 당한 외할매는 그래도 정신이 또렷할 때가 더 많았는데.

손녀에게 매 맞고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엄마는 나중에 죽어서 외할매를 만나면,

어린 시절을 포함한 평생을 왜 그렇게 못 해줬냐고, 왜 한 번도 다정함을 보여주지 않았느냐고 따질 거라고 했다.

그럼 외할매는 뭐라고 대답하실.

부디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해주셨으면 좋겠다.

내가 그때 때린 거 미안해 하고 있으니, 죽어서 만나면 꼭 사과도 드릴테니

외할매도 꼭 그래주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평생 서럽고 원망스러웠겠지만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할매 맘속에 있었다는 걸 나는 안다.

손녀가 잘못 기억한 생일상을 차리고,

예쁜 투피스를 사준 것은 그 때문이다.

내가 엄마딸이었기 때문 엄마에게 못해준 것을 나에게 해준 것이다.


먹고사는 일만 아니었다면, 네가 부를 때 바라봐주고 네 얘기를 들어주고, 눈 마주치고 살았을 거다. 평생 효녀로 사느라 나한테 중요하고 소중한 게 뭔지 모르고 필요한 역할만 생각하고 살았지


외할매의 목소리를 문장으로 옮겨보니,

울엄마가 하는 생각과 똑같다. 나는 누구의 목소리를 옮긴걸까 헷갈릴 정도다.

 엄마도 손주들에게는 그렇게 너그럽고 따뜻할 수 없는 할머니다. 엊그제는 갑자기 비가 쏟아져 우산을 들고 손주 학교에 가서 교실을 찾느라 4층을 몇 번을 오르내렸다 한다.

- 뭘 그렇게까지 해. 알아서 친구꺼 같이 쓰고 오겠지.

내 말에 엄마는,

-내 새끼는 못 챙겨줬는데 새끼의 새끼는 챙겨줘야지

하고 말했다.

 

평생 효녀로 살았던 우리 외할매,

딸로서의 삶은 어땠을지 안 봐도 알겠다,

그저 안쓰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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