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 하늘이 높게 떠 있는 모습에 아무리 힘든 입덧이 내 몸을 지배하고 있어도 위로받을 수 있었다. 파란 하늘에 이끌려 소박하게 산책이라도 나가고 싶지만 나가는 순간 어딜 가나 음식 냄새를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에 라푼젤과 똑같은 처지였다. 성에 갇힌 공주 같은 느낌이랄까. 하하
멀지 않은 곳에 공원이 있는데 못나가는 나는 라푼젤
그렇게 어제와 똑같은 위치에서 뜨거운 햇살과 맑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막국수가 먹고 싶어 졌다.
우리 동네 막국수는 다른 집과 조금은 다른 느낌이었다.
맑은 육수를 이용했고 최소한의 고명이 올려져 있었다. 텁텁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고춧가루 양념장이 들어있어 먹다 보면 텁텁함의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나의 맛집은 최대한 깔끔한 느낌의 막국수였다.
거기에 식초를 한 바가지 뿌려놓고 새콤하고 깔끔하게 한 입 후루룩 하고 싶어졌다.
남편의 퇴근과 동시에 막국수 노래를 불렀다.
남편은 오케이를 한방에 외치며 내일이 주말이니 시원하게 한 그릇 하러 가자고 이야기했다. 입덧으로 먹지 못하던 내가 무언가가 먹고 싶다고 하는 걸 신기해하면서도 기분 좋아했다. 한동안 제대로 먹지 못하는 나를 보고 많이 안쓰러워하던 남편의 눈빛이 오래간만에 활기가 돌았다.
나 또한 오래간만에 먹고 싶은 게 생겼고 내일 먹으러 간다는 생각에 일찍 잠을 청했다. 이상하게 다른 날보다 일찍 잠든 거 같았다. 그날 꿈에서도 막국수를 먹는 꿈을 꿨다.
나는 꿈에서도 막국수 한 그릇을 꿀떡했다. 시원한 국물까지 완대접했다.
그렇게 맑은 햇살이 나를 깨우는 듯했지만 시간은 벌써 10시!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르다는 것으로 위로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일어나 세수와 양치만 대충하고 옷을 입었다. 자고 있던 남편도 재촉하여 깨웠다.
“여보 지금 자고 있을 시간이 아니야. 지금 당장 튀어나가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못 먹을 거 같아.”
다른 음식 냄새를 맡는 순간 아무것도 먹지 못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빠릿빠릿 움직였다.
그렇게 식당에 도착하여, 사람이 적은 중간 자리 위치를 선택하여 앉았다. 앉자마자 물막국수와 감자전을 시켰다. 이게 국 룰이다.
막국수 집에서는 감자전을 먹는 게 국룰이다.
한 20분이 지나자 막국수와 감자전에 한 번에 쫙 나왔다. 내가 예상했던 막국수와 현실세계의 막국수 모습이 똑같아 기분이 좋았다.
남편은 재빨리 먹기 좋게 가위로 잘라주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식초를 거의 3분의 1을 넣었다.
크으으 그 새콤하고 시큼하고 깔끔한 국물이 목을 넘기듯 들어가자 속에 뭉쳐있던 무언가가 쑥 하고 내려갔다.
입덧을 시작하면서 특히 명치 쪽에 무언가가 턱 하니 막혀있는 듯한 느낌 때문에 입맛이 없었는데 그 시원한 국물이 쫙하고 들어가니 엄청 더운 날에 땀을 뻘뻘 흘리고 흐르는 강물에 몸을 던지는 듯 그런 해소되는 기분!
더 쉽게 표현하자면 전날 못 마시는 술을 회식으로 인하여 억지로 많이 마시고 다음날 아주 매콤~한 국물음식으로 땀 뻘뻘 흘리며 해장하는 듯한 기분!
말로 이 기분을 공유하자고 하면 하루 이틀 날을 잡아야 할 정도였다.
잘 먹고 있는 나의 모습에 남편이 신기한 듯 쳐다보다가 본인도 먹기 시작했다.
맛있다고 외쳤던 내 말에 남편도 덩달아 맞장구를 쳐주었다. 오늘 하루가 이렇게 기분 좋게 시작할 줄이야.
이 글을 쓰면서도 기분이 좋다는 말을 몇 번이나 썼는지도 모를 정도로 텐션이 높았다.
우리는 그렇게 깊은 대화를 하지 않고 막국수를 먹어대기 바빴다. 그 커다란 은색 대접에 머리를 박고 먹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국물까지 쫙 한번 마시고 식사가 끝이 났다.
그렇게 날아갈 듯한 발걸음도 식당을 나섰다.
공기에 많은 음식 냄새가 코를 통해 들어왔지만 이미 속은 맛있었던 막국수로 가득 찼기에 그 공기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룰루랄라 높은 텐션으로 걸음을 걷는 건 저 멀리서도 리듬감 있어 보였다.
집에 거의 다 와가는데 사고는 그 찰나 일어났다.
보도블록 언덕이었는데 슬리퍼를 신고 있던 발이 제대로 딛지 못하면서 아스팔트 바닥에 퍽하고 넘어지게 되었다.
순간 내가 아픈 것보다 ‘아가!’ 하고 외치고 배를 감쌌다.
남편은 후다닥 다가와 끌어올리려고 했지만 아가를 먼저 생각한 다음은 내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무릎 양쪽은 상처를 내고 피를 흘리고 있고 피멍이 가득 들어있었다.
딛고 있던 손도 그 상태는 마찬가지였다.
옆에 있던 남편은 내 몸을 일으켜 자꾸 세우려고 했다. 나는 아프다고 자꾸 짜증내고 있었다.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무릎 두짝이 날아갔지만 조금 나아진 상태
겨우겨우 일어나 절뚝거리며 집까지 향했다. 집에 가자마자 상처를 치료했고 검색하기 시작했다.
‘넘어졌는데 아가는 괜찮을까요?’ 혹은 ‘넘어지고 난 후 병원을 꼭 가야 하는 게 맞을까요?’로 정보를 무한으로 접했다.
결론은 내일 병원에 가보자가 내려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무조건 확인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