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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야 Mar 31. 2023

욕실에서 마주하는 나

나는 평소에 거울을 잘 보지 않는 편이다. 거울만 보면 단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다듬어야 할 눈썹, 어김없이 나는 여드름, 부쩍 넓어진 모공들, 점점 깊어지는 팔자주름, 축 처진 입꼬리 등.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거겠지. 


그럼에도 내가 거울을 오랫동안 보는 시간이 언제인지 돌이켜보면 바로 욕실에 있을 때이다. 나는 두피관리에 공을 많이 들인다. 밀도 높은 머리숱에 숨 쉴 공간이 부족한 두피 때문에 관리하기가 영 힘들다. 구석구석 샴푸질을 해줘야 하는데 한 번으론 부족하다. 기본 두 번은 샴푸질을 꼼꼼히 하고 트리트먼트를 10분 정도 하면서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양치질을 하며 떠올려본다. 평소 저녁에 머리를 감는 나는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감정들을 느꼈는지를 회고하는 편이다. 거울을 마주하며 나의 하루를 종종 리뷰해 본다. 


다만 아쉬운 점은 욕조가 없다는 것이다. 내 로망은 넓은 욕조에 따뜻한 물에 거품을 풀어놓고 몸을 푹 담그는 것. 서울 살이가 벌써 7~8년이 되었다. 타인의 집에 얹혀살며 내 집인 듯 아닌 듯 살아왔다. 하지만 단 한 군데도 욕조가 있는 집은 없었다. 그래서 더 로망이 생겼다. 욕조가 있는 집. 여행을 갈 때면 욕실에 욕조가 있는지를 꼭 확인한다. 따뜻한 물에 내 온몸을 녹이고 싶은 그런 날이 있다. 유난히 마음이 어렵고 힘든 그런 날. 


다음 내 거처의 모습을 미리 상상해 본다. 침실과 업무 공간을 꼭 분리해야 하기 때문에 방은 2개가 있어야 한다. 요리에 일가견이 없어서 부엌은 좁아도 괜찮다. 제일 중요한 욕실, 욕실에는 꼭 욕조가 있는 곳으로 갈 것이다. 미리 그려보는 미래의 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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