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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카 Dec 02. 2018

가시

파랗게 멍든 시간들.16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최악. 이 두 글자 말고는 할 말이 더 없다. 지끈거리던 머리는 몸살의 전조였는지 내 입맛을 앗아가고, 몸은 으슬으슬해졌다. 괜찮은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약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정작 약을 사러 나가는것조차 힘겨워. 침대위에서 벗어난적이 없어 오늘은. 작업해야하는데, 논문도 마무리 해야하는데. 할게 많은데. 모든게 멈춰버렸다. 더이상 어떤 안온함도 없고 터질듯이 복잡한 머리만이 남아버렸다.

중요한게 뭔지 알아. 일단 움직여야해. 뭐든 해야해. 밥이라도 먹어야해. 그런데 할 힘조차 없다. 마른 기침이 조금씩 새어나오고, 코끝이 시리다. 이불을 벗어나면 급격히 추워온다. 왠지모르게 서럽다. 어제 찾아온 우울이 스멀스멀 차오른다. 무언가 시커먼것이 몸을 집어삼킨다. 불안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외로워져만 간다.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계단위의 여자.’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이른 시기에 겪은 커다란 패배는 우리 삶의 방향을 전환 시킨다. 반면에 작은 패배는 당장의 변화를 유발하지는 않으나, 살아가는 내내 우리 곁에 머물면서 우리를 괴롭힌다. 살갗에 깊이 박혀 빠지지 않는 작은 가시처럼.’ 어쩌면 지우고 싶은 무거운 하루라는건 삶에 커다란 변화를 줄 수 있는 실패가 아닌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며 자괴감을 일으키는, 작은 실수들이 즐비한 하루가 아닐까. 마치 나의 어제처럼.

그래 가시. 가시가 박힌것 처럼 그렇겠지. 내가 너에게 박아버린 가시를 통해, 내가 나에게 가시를 박았어. 결국 남에게 상처 주는 행위는 스스로에게 상처주는 행위일지도 몰라. 아픈거지. 미안해? 미안하지. 너를 상처 입힘으로써 내가 상처 입었어. 그래서? 상처가 아픈걸 알고나니까, 더욱 미안해져버렸어.

스스로 이런 말들을 중얼거린다. 말을 더 조심하자고 스스로 다짐한다. 가끔 생각한다. 상처를 극복한 사람은 더는 예전의 상처에 붙들려 있지 않고 강인해진다고. 하지만 상처를 준 사람은 그 행위의 원인이었던 자기 오류와 편견을 오래 붙들고 있다고. 종종 인생길에서는 죄 있는 삶이 더 안온해지는 것 같다. 결국엔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서 문제점을 알고 반복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여전히 몸이 시리다. 머리는 지끈거리고 식은땀은 조금씩 등에 맺힌다. 손발이 차가운것 같은데 자꾸만 땀이 맺힌다. 어지럽다. 몸도 마음도 망신창이야. 만약 아픈 상태라서 이런 감정을 느끼고, 그 속에서 배웠다면 지금의 몸살도 나쁘진 않아. 하루빨리 깨닫고, 아프지 않은 날이 와서 다시 건강한 마음이 찾아오길 바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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