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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카 Dec 06. 2018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파랗게 멍든 시간들.18

축하합니다. 성공하셨어요. 나의 하루는 절망에서 시작해 절망에서 끝납니다. 오늘도 이렇게 숨이 붙어 있음에 머리가 지끈 거리는 하루를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에 어젯밤 숨이 끊어지지 않은 나를 저주합니다. 직접 죽으려 했으나 뼈가 갈릴때까지 그어야 죽을 수 있다는 사실만 깨닫고 말았어요. 목을 매달땐 많이 튼튼한 기둥이 필요하더라구요. 그렇게 두가지 배움 끝에 자연스럽게 죽어지기를 바라는 나의 하루하루입니다. 삶에 더이상 의욕이 없고 어떠한 의미도 없어요. 사람사이라는게, 그 관계속에 상정되는 모든 안온함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나는 졸렬하고 안쓰럽게 나의 목을 붙들고 죽기를 바랄 뿐입니다.

봄은 나에게 어떤 따스함도, 생명이 시작되는 찬란함도 주지 못했습니다. 비참함만을 나에게 주었고 지금같이 감정이 끝없이 추락할때면 왜 죽지 못했을까 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초록이 가득한 여름도, 따뜻한 커피 한잔이 어울리는 가을도, 그리고 이제 다가올 길고긴 추위속의 겨울도 저에게 어떤 이유 하나 주지 않았습니다. 겨울이 지나 돌아올 봄은 따뜻할까요. 그때 저도 생명이 싹틔우는 그 신비로운 체험을 할 수 있을까요.

사실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아무 일도 아무 예감도 아무 느낌도 없는 이곳에서 저는 아무말이나 토해내는 가식투성이일뿐입니다. 저에게 필요한것은 안정적인것인데 왜 안정따위 없는 삶을 살고 있는건지. 중심하나 잡지 못한채 외나무다리 위를 운좋게 걸어온 기분입니다. 조금만 기울었으면 여지 없이 추락 했을 나의 몸뚱아리. 가끔 손목에 있는 타투 밑으로 서늘함이 스쳐 지나갑니다. 다시는 하지 않겠다며 다짐했을터인데 이다지도 부질없는 것임을 왜 알지 못했을까요. 물론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아무 의미없는 삶이 지나 초로의 길로 들어설 쯤엔 저에게도 어떤 의미가 생길까요.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지만 내심 살고 싶은가 봅니다. 바람에 실려오는 작은 바램으로나마 삶에 대한 의지를 표하지만 글쎄요, 지금은 그저 부질 없음에 통감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봄의 의미가 다르게 느껴질 때 쯤엔 그 바램 하나가 사무치게 그리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감정은 '없어도 굳이' 정도가 될까요.

편해지고 싶습니다. 저는 이제 심장소리를 멈추고 두 눈을 닫고 점점 멀어지는 숨결 속에 그렇게 스스로를 보내는 과정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주하려합니다. 매일매일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것. 하루하루 나의 몸속의 세포가 노화되어 가는 것.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닌 죽어가는 것 이라는걸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걸까요. 있잖아요. 그럼에도 천천히 나의 죽음에 유예를 두는 것은 제가 가진 삶에 대한 미련인걸까요. 누군가 알고 있다면 알려주길 바랍니다. 미련을 둘 만큼 나는 이 삶에 애착이 있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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