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랗게 멍든 시간들.30
‘함께 공유했던 추억이 실은 나에게만 즐겁고 설렜던 거라면 과연 우린 그때 같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 고민이 시간이 갖는 의미까지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내 소식을 기쁘게 전할 사람과 먼저 연락이 오지 않으면 말해주지 않을 사람의 경계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이 현상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어쩌면 씁쓸하기도 하고, 좋기도 한 모호한 생각들. 작년 한해가 끝나면서 이 생각들은 점점 더 뚜렷해져 가고 있다.
어찌보면 감흥이 줄어들기 때문일 수 있다. 새로운 추억과 관계속에서 이루어져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설렘이 없어져 가는, 감흥조차 없는 그런. 그런데 있잖아. 그렇다면 처음부터 감흥없이 살 순 없을까. 어쩌면 삶이 재미 없어 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늘 재밌기를 바라기만 한다면 감흥이 없어지는 순간이 왔을 때 찾아오는 허무함과 공허함이 사라질 듯 하다.
얼마전 서울에 올라왔다. 아는 형 집에서 잠시 얹혀 살면서 보증금을 모을 때 까지만 있기로 했다. 그리고 입사원서를 지원하고 연말과 신년이 겹치는 바람에 이곳저곳 잡힌 약속들을 나가면서 그동안 보지 못한 얼굴들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은 그들은 크게 변한 것 없이 늘 그자리에 있어주었다는 것. 동시에 내가 제일 많이 들은 말은 사람이 뭔가 좀 변했다는 것. 내가 그들과 함께 있는 일이 즐거운 것은 비록 내가 변한다 하더라도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어주는 그들 덕분에 내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 할 수 있어서.’라고 느껴버렸다. 그들과 함께 있는 것에 설레임같은 감흥따위는 없다 한들 편안함은 존재한다. 그래 그들 속에서 나는 안온하다.
이제는 새해가 밝아도 어떤 설렘도 없고 그저 ‘고단했던 한 해가 끝났다.’ 라는 상쾌함만이 존재했다. 그러면서 올해의 가장 큰 목표가 하나 생겼다. 2019년의 마지막 날 잠들기 전, 그래도 2019년은 잘 살았다 느낄 수 있는 한 해가 되는 것. 이것이 지금 나의 가장 큰 목표가 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어제 친구들과 이야기 하다가 올해의 목표에 대해서 말을 나눴는데 대화가 끝나고 집에 와서 자잘한 목표들을 몇가지 세워 보았다. 먼저 말을 줄이는 노력을 하려 한다. 괜히 쓸 데 없이 머리 안에 떠오르는 모든 것들을 다 뱉다 보니 지켜야 할 책임감이 생기고, 은근히 지치던 내가 있었다. 인생의 큰 계획들은 가슴 속에 담아두려 한다. 작년에 뱉어놓고 지키지 못 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내가 참 한심해 보였다. 올해는 무거운 입을 달고 살 생각이다. 더불어, 욕도 줄이려 한다. 가끔은 욕을 섞지 않으면 문장을 뱉을 수 없을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심각하다 느꼈다. 그래. 줄여야겠다.
또 몇가지 경계해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해 보자면 쌓으려는 마음과 돌려 받으려는 마음, 유지하려는 마음, 바라는 마음, 당연하게 생각하는 마음. 이것만큼 조심해야 할 것들이 없다 생각한다. 결국엔 스스로를 갉아먹는 것으로써 존재하기 때문이니까. 아마도. 그런거지. 마음이 불안할 때에는 답이 명확한 생각을 하자. 신년이라고 거창한 계획 세우지 않아도 좋으니. 눈앞에 주어진 작은 언덕을 종종 걸음으로 오르고. 하늘을 보자. 기쁜 날에도 슬픈 날에도 하늘은 그대로다. 내 마음이 거기에 색을 입힐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