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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늬 Aug 10. 2020

강아지 '우리'와 우리가 되는 법

episode1. 좌충우돌 강아지 임시보호기


 

삐빅- 왕초보 집사, 임시보호를 시작합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고양이, 강아지, 토끼, 햄스터, 가릴 것 없이 동물이란 동물은 모두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도 강아지를 특히나 좋아했다. 귀여운 외모에, 주인밖에 모르는 충성심, 사랑스러운 애교까지 어린 나에게 강아지는 모든 게 완벽한 생명체처럼 보였다.


어렸을 적 동물은 절대 안 된다는 부모님의 강경한 반대 때문에, 독립한 후에는 내가 강아지를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강아지를 키우는 게 내 꿈이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로 강아지와 함께하는 삶은 내 오랜 꿈이었다. 어쩌면 이미 오래전부터 아니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그 순간부터 나에게 강아지는 꼭 필요한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길 가다 마주친 강아지들만 봐도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고, 랜선 집사 생활로 강아지를 향한 열정을 뽐내던 어느 날, 갑자기 발발한 코로나 사태로 인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나긴 재택근무가 시작되었고, 때마침 혼자산 지 3년 차, 직장생활 3년 차, 일도, 연애도, 인생도 내 맘 같지 않은 순간만 잔뜩 늘어나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나의 눈에 인스타그램 속 시보호소 안락사 명단에 오른 아주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들어왔다.


무슨 마음인지 우연히 본 그 아이가 계속 눈에 밟혀서 밤새 잠을 설치고는 새벽녘 몽롱한 정신의 힘을 빌려 임시보호 신청서를 덜컥 제출해버렸다.


'그래 안락사돼서 죽거나, 저 좁은 철장 안에 있는 것보다는 조금은 좁아도 따뜻한 집에서 집밥 먹으면서 입양처를 알아보는 게 훨씬 나을 거야'라는 생각이었지만 동시에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재택이 끝났는데도 입양처를 찾지 못하면 어쩌지?' '너무 정이 들어서 입양을 보낼 때 마음이 아프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들이 몰려와 두려워졌다.


다음날, 점심쯤이었나 시보호소에서 연락이 와 아이를 언제 데려갈 수 있는지 물었고 아이 이름을 뭐라고 부르지 하며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고양이 이름이 떠올랐다. 드라마 남녀 주인공이 고양이를 ‘우리’라고 불렀었지 그 드라마를 유난히 좋아했었던 터라 임시보호하는 강아지 이름을 ‘우리’라고 부르기로 결심했다.


보호소에 도착해서 내 인생 첫 번째 강아지 ‘우리’를 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어딘가 억울하게 생긴 얼굴, 뽀송뽀송하고 노란 털, 아직 채 서지 않은 귀,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시고르자브종 믹스견 아기 강아지 '우리'


인스타에서 본 우리 사진





강아지 '우리’와 우리가 되는 법


유튜브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봤던 것을 제외하고 실제로는 강아지를 한 번도 키워본 적 없었던 나는 보호소에 있던 아이들을 처음 데리고 오자마자 너무 안아주면 분리불안이 생긴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그저 이 작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생명체가 너무 사랑스럽고 안쓰러워서 보자마자 이리 쓰다듬고 저리 쓰다듬고 안았다가 내려놓았다가를 반복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정말 우리 집에 있는 일주일 내내 나만 졸졸 따라다녔다자다가도 내가 화장실을 가면 벌떡 일어나서 쫒아오고 내가 샤워를 끝마칠 때까지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렸다. 내 걸음 하나하나마다 쫒아와서는 나랑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동오’를 처음 데려왔을 때는 일주일 정도 안아주지도 많이 쓰다듬어 주지도 않았다.

덕분에 지금 동오는 독립적인 강아지가 되었다.)


한참 뛰어놀 나이인데 우리는 1차 접종 밖에 하지 못한 탓에 산책을 할 수가 없어서 강아지 슬링백에 넣어서 그렇게 주변 동네를 돌아다녔다. 그당시 일이 바쁘지 않기도 했고 나도 무언가에 집중할만한 것이 필요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점심시간만 되면 우리를 슬링백에 넣어서는 집 근처 산책로로 나섰던 것 같다.


'우리’를 데리고 있던 초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우리’가 한참 이갈이 중이었던지라 뾰족한 유치로 내 손발을 하도 물어대는 바람에 손발이 성할 날이 없었으며, 내 옷과 아이폰 충전기, 노트북 충전기와 집안에 있는 온갖 물건을 다 뜯었고, 나를 하루 종일 졸졸 쫓아다니는 우리의 스토킹에 신물이 났을 뿐 아니라 불안함의 표현이었는지 집안 곳곳에 오줌을 싸서 매일 방바닥을 걸레로 닦고 빨래를 돌리고 너는 게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매일 아침 6시만 되면 나를 깨우기 시작했고 내가 입에 뭔가를 넣기만 하면 난리가 났기 때문에  당시 나는 피곤함에 쩔어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유난스러웠던 게 아니라 그 나이 강아지들에게 나타나는 당연한 모습이었는데, 강아지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데다가 방구석 강형욱이었던 나는 조그마한 행동 하나에도 혹시 문제행동인가 싶어 파르르 떨고는 했었다.

(변명을 하자면 보호소에서 입양된 아이들이 문제행동으로 파양 되는 경우가 잦아 임시보호하는 동안 문제행동이 나타나면 고쳐서 좋은 가족에게 입양 보내고 싶었다.)






굿바이! 아가 '우리'


우리를 데려오기 전부터 잡아놓은 선약이 있어 주말 하루 동안 우리를 오빠네 집에 맡겼다.  

장문의 ‘우리’가이드 톡과 함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이미지 참고)

지금 생각하면 오빠가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싶다. '배변 실수를 해도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아직 접종은 안 시켰으니 산책은 안된다.' '이갈이 시기라 뭔가를 물어뜯을 수 있는데 그때는 장난감을 던져줘야 한다.'와 같은 조언들이었다.


저녁에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갑자기 시보호소 봉사자님께 연락이 왔다. ‘우리’ 입양자가 나타났는데 언제쯤 우리를 보호소로 데리고 올 수 있냐는 이야기였다.'우리' 입양자님이 아이를 최대한 빨리 입양하고 싶어 하신다고 했다.


그 연락을 받자마자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당장이라도 집에 뛰어가고 싶었다. 우리와 이렇게 빨리 이별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이제야 '우리'와 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 같은데


'그 입양자는 누굴까, 내가 더 잘 키울 수 있지 않을까, 강아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면 어떡하지 이상한 사람이면 어떡하지 내가 우리를 더 사랑하는 것 같은데...'와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 택시를 타고 집에 오는 내내 펑펑 울었다.


택시를 타자마자 울기 시작해서 내릴 때까지 쉬지 않고 울었으니 분명 택시기사님은 내가 오늘 실연당한 여자인 줄 아셨을 거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집까지 전력질주를 해서 문을 열고 우리 얼굴을 보는 순간 다시 눈물이 터져 나왔고 그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는 그저 반갑다며 꼬리를 흔들었다.


하루라도 우리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화요일에 데려다주겠다고 하고 월요일은 집에서 하루 종일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좋아하는 비싼 한우 개껌도 사 먹이고 입양자 분께 드릴 우리 장난감, 하네스, 리드 줄도 챙기고 혹시 사료가 갑자기 바뀌면 탈이 날까 봐 집에서 먹이던 남아 있는 사료도 챙겼다. 우리가 내일부터 집에 없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다가 짐을 싸기 시작하니까 새삼 우리 없는 빈집이 너무 두려워지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우리를 보호소에서 데려올 때 구매했던 목줄에 굳이 굳이 '우리'라고 썼다. 이렇게라도 나와 함께 '우리'였던 시간이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보호소에 도착해서 입양자분께 우리를 보냈다. 다행히 우리는 입양자를 보자마자 자기 가족인 줄 알았는지 엄청나게 잘 따랐다. 다행이다 싶다가도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요미가 되었다.(이름이 바뀌는 것도 그때는 어찌나 섭섭하던지..)


내가 울면 안 될 것 같아서 입양자 앞에서는 꾹꾹 참다가

“아이고 서운하시겠어요. 어떡해요~” 하는 말에도 “아니에요 잘 키워주세요~.” 웃으면서 대답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를 타자마자 또 왜 이렇게 눈물이 나던지


‘우리’가 없는 우리 집은 너무 이상해서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했고 매일 집 근처 산책로를 걸으며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부러움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쉽사리 강아지 입양을 생각하지 못한 건

내가 정말 강아지를 잘 키울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강아지를 반려하는 삶에는 수많은 책임감과 헌신이 뒤따른다.

(그러니까 제발 아무 생각없이 입양하지 마세요)


다만, 내가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강아지를 반려하는 삶은 책임감의 무게를 감수할 만큼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이다. (강아지가 나에게 보여주는 무한한 사랑과 믿음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거다.)


결국, 내가 가진 능력 내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으로 강아지를 입양하기로 결심했다. 재택근무가 끝나고 회사를 나갈 때의 상황, 주말 약속 등 나의 생활패턴을 체크해보고 나의 삶과 강아지의 삶을 어떻게 균형 있게 맞춰갈 수 있을지는 더 구체적으로 고민해보기로 했다.


결국 일주일의 임시보호를 계기로 1인 1견 가구 인생이 시작되었다.


한 번도 짖는 걸 본 적 없는 순둥이 아기 강아지 '우리'

잘 때는 꼭 내 옆에서 살을 붙이고 자던 애교쟁이 '우리'

내 인생 첫 번째 강아지 '우리'

굿바이 '우리'

목줄에 우리 이름을 써서 입양자분께 선물로 드렸다
탄천에 마실나간 우리
코 자는 아가 우리




수민

강아지 동오와 둘이 살고 있습니다.

본업은 기획자, 부캐는 동오 언니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instagram : sumsumi_n


동오

진도 믹스 시고르자브종 스트릿 출신 강아지

동네에 모르는 사람과 강아지가 없는 핵인싸견

하루에 두 번 산책해도 지치지 않는 개너자이저

유전자 구성이 다른데 왜 언니랑 성격이 같은지 미지수

@instagram : dogdong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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