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숨늬 Aug 18. 2020

우주의 먼지가 되고 싶을 때, 나는 너에게 간다.

episode 4. 사랑해도 두렵지 않은 존재가 생긴다는 것


너는 내가 처음 봤던 눈동자야


강아지를 키우면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온 마음을 다 주어도 두렵지 않은 존재가 생겼다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아니 좋아하는 것을 넘어 사랑하게 되면 뭔가를 자꾸 해주고 싶어한다. 돈과 시간과 감정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타입이다.


예전에는 그런 마음이 독이 되서, 상처를 받을 때도 있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 경험이 쌓인 지금에는 그런 감정을 이성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예전처럼 빠른 속도로 사랑에 빠지거나 누군가를 쉽게 완전히 믿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조금은 아쉽다. 머릿속에 신호등이 있는 것처럼 경고등이 울리면 잠시 멈춤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간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아주 복잡하고 수많은 이해관계가 뒤섞여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히려 가깝고 친밀한 사이일수록 상대방을 이해하기는 어렵고 상처 받기는 쉬워진다. 누군가를 맘 놓고 사랑하기에는 너무 거친 세상이 아닌가.


그런데 동오는 그런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마음 놓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다.


동오는 그저 내가 오늘도 건강히 집에 돌아왔다는 것에 세상이 떠나가라 기뻐하고, 함께 산책할 수 있음에 감사해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동오에게 주는 사랑보다 동오가 나에게 주는 사랑과 믿음이 더 견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가 쓸데없는 존재 같이 느껴질 때, 우주의 먼지로 사라져 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 때,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동오에게 간다.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두고, 누워있는 동오 옆으로 간다. 그리고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동오와 눈을 맞춘다.


‘오늘 너무 힘들었다고,

사는 게 버티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고'


그러면 조금씩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다시 무언가를 할 용기가 생겨난다.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좋아하는 노래 중에 검정치마의 'Antifreeze'라는

노래가 있다. 특히 가사가 참 예쁜 곡인데

동오를 보고있으면 꼭 이 노래가 떠오른다


영화서도 볼 수 없던 눈보라가 불 때
너는 내가 처음 봤던 눈동자야
낯익은 거리들이 거울처럼 반짝여도
네가 건네주는 커피 위에 살얼음이 떠도
우리 둘은 얼어붙지 않을 거야
바닷속의 모래까지 녹일 거야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검정치마, Antifreeze-


가끔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동오가 나에게 어떤 존재냐고


내 전부,

나를 살게하는 존재,

눈보라가 세차게 불 때 처음 본 눈동자,


동오가 이렇게 내 몸에 기댈때 너무 행복하다.




수민

강아지 동오와 둘이 살고 있습니다.

본업은 기획자, 부캐는 동오 언니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instagram : sumsumi_n


동오

진도 믹스 시고르자브종 스트릿 출신 강아지

동네에 모르는 사람과 강아지가 없는 핵인싸견

하루에 두 번 산책해도 지치지 않는 개너자이저

유전자 구성이 다른데 왜 언니랑 성격이 같은지 미지수

@instagram : dogdong5


미모 뿜뿜 어린 시절 동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