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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늬 Aug 10. 2020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견

episode 2. 동오와의 첫만남

강아지도 인연이 있는 법


강아지와 함께 살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나서 어떤 강아지를 키우면 좋을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몇 가지 조건을 정하게 되었는데 정리해보면 대략 아래와 같았다.



1. 강아지를 입양한다면 유기견 보호소에 있는 아이를 입양해서 기르고 싶다.

2. 품종견이 아닌 믹스견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믹스견이 예쁘고 개성 있다고 생각해왔고, 사실상 품종견은 보호소에서도 인기가 많기 때문에 금방 입양되지만 흔히 고르자브종(a.k.a똥개)이라고 불리는 믹스견은 국내 입양이 어려워 보호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거나 해외 입양을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3. 성견이 아닌 아기 강아지였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부터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기도 했고 성견 같은 경우는 이미 성격이 형성되어 버린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기 강아지에 비해 문제행동을 보일 확률이 높고 문제행동을 보인다면 함께 살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경우가 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직장인이 아니고 가족과 함께 강아지를 키우는 경우였다면 성견 입양도 고려했겠지만 나의 환경을 고려했을  아직 성격이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아기 강아지를 입양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위  조건을 가지고 포인 핸드 어플을 들락날락 거리며 마음에 쏙 들어오는 강아지를 찾기 시작했고

2마리의 아이가 눈에 띄었다. 그중 한 아이가 바로 지금 나의 반려견이 된 '동오'다.


사진을 본 순간 꼬질꼬질한 털 사이로 보이는 진한 쌍꺼풀, 어딘가 억울해 보이는 얼굴, 무엇보다 몸의 비율을 완전히 파괴해버린 짧은 다리에 반해서는 바로 입양 상담을 예약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검은색 아가는 동오와 같은 배에서 태어난 동오의 오빠인데 다리가 길고 얼굴이 작은 반면 동배 강아지 중 동오만 유난히 다리가 짧고 얼굴이 컸다. 동오만의 매력 포인트!)


노란 털을 가진 아기 곰돌이 같은 강아지가 바로 동오다.


사실 동오 말고 칠곡 보호소에서 본 믹스견 아가의 입양 우선순위가 높았다. 모견과 함께 입소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클지 성견 시 크기를 예측할 수 있었고, 모견의 크기를 고려했을때 7kg이상 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10킬로 이상되는 중형견을 키우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에 아무래도 얼마나 클지 모르는 동오보다는 우선 순위가 높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강아지와 사람 사이에도 인연이라는 게 있는 건지 그 강아지를 임시보호하던 봉사자가 내가 '혼자 사는 싱글녀'라는 이유로 고민을 하다가 결국에는 다른 가족에게 입양 보냈다.


봉사자 분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몇몇 생각 없는 '혼자 사는 싱글녀' 카테고리에 속하는 보호자들이 외로움에 덜컥 강아지를 입양했다가 남자 친구가 생기거나 결혼을 하면서 강아지를 유기했다는 이야기는 나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도대체가 어떻게 가족으로 들인 자기 반려견을 그런 이유로 버릴 수 있는 건지 나로서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 임시 보호자 분에게는 나 역시도 자연스럽게 '혼자 사는 싱글녀' 카테고리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녀의 선택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낙담하기도 했고, 내 환경이 더 좋았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부모님께 강아지를 키우는 것에 대해 충분히 협조를 구하고 허락을 맡은지라 본가로 들어가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다만, 당장은 그게 쉽지 않은 상황이라 그래, 사람 사이에도 인연이 있는 것처럼 강아지와도 인연이 있을 테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동오를 만나러 보호소로 향했다.




강아지를 왜 키우고 싶으세요?



동오가 있던 용인동물보호센터는 시에서 운영하는 보호소로 입양 절차가 상당히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우선 1차로 보호소를 방문해서 보호소 직원과 인터뷰를 진행한 후 입양을 원하는 아기를 확인하고 보호소 측에서 인터뷰 내용을 살펴본 후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에게 입양을 확정한 후 입양이 이루어지는 식이었다.


보호소에 도착해서 입양 전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는 질문과 답변이 있다.

보호소 직원이 나에게 "왜 강아지를 키우고 싶으세요?"라고 물었고,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저는 사람보다 강아지가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첫째, 강아지는 절대 보호자를 배신하지 않기 때문에

둘째, 보호자가 가난하던 부자던 똑똑하던 멍청하던 어떤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셋째, 강아지는 늘 보호자가 주는 사랑 그 이상의 것을 주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나는 정말이지 때때로 사람보다 강아지가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인터뷰를 끝내고 보호소 직원이 나에게 입양 신청의사를 물었다 동오가 피부병이 있어서인지 보러 오는 사람은 많은데 입양 신청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이미 동오의 짧은 다리에 완전히 반해버린 나는 그까짓 피부병 돈이 얼마가 들던지 고치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으로 바로 입양 신청을 해달라고 했다.


"동오가요...피부병이 좀 있어요. 치료를 하고 있기는 한데 환경이 좋지 못해서 그런지 잘 낫지를 않아서요

빨리 나가서 치료하면 좋을 텐데요."


"혹시 입양 신청하신 분들은 많나요?"


"보러 오시는 분들은 많은데 피부병이 있어서 그런지 입양 신청하시는 분은 많지가 않아요."


"입양 신청해주세요! 피부병이야 고치면 되죠."


칠곡 보호소 아가의 입양이 불발된 경험이 있어서인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크게 기대하지 말자고 되뇌었다.

이번에도 입양이 불발되더라도 동오가 더 좋은 곳으로 입양 가면 좋은 일이니 그저 동오의 행복을 빌어주자고.



애기때 피부병때문에 자꾸 긁어서 넥카라를 씌워놓은 동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견


일주일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엄마와 쌀국수를 먹고 있는데 보호소에서 전화가 왔다.


"동오 입양 확정해드리려고요. 언제 데리러 올 수 있으세요?"


기쁨과 설렘 반, 걱정과 두려움 반이었다.

 '자 침착하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되지?'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우선 동오가 앞으로 쓸 밥그릇, 침대, 장난감, 하네스, 리드 줄, 이동용 켄넬, 사료, 배변패드 등 애견용품을 미친 듯이 구매하기 시작했고 앞으로도 계속 동오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  어떤 이름이 좋을까 고민했다. 콩이? 절미? 구마? 감자? 뭐라고 부를지 고민하다가 콩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콩이에서 동오가 된 이유는 실제로 동오를 만났을 때 콩이라는 이름이 안 어울리기도 했고 동오가 자기 이름을 이미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동오라는 이름이 왜인지 마음에 들었다.)


몇일밤 설렘반 걱정반 잠을 설친 끝에야 동오를 품에 넣을 수 있었다. 가까이에서 처음 본 동오는 꼬질꼬질했고, 냄새가 났고, 피부병으로 인해 꼬리와 귀에 털이 듬성듬성 빠져있었다. 작고 따뜻하고 꼬리한 냄새가 나는 아기 동오가 난생 처음 본 나에게 안겨오는 걸 보면서 벅차는 마음에 한쪽이 먹먹해졌다.


보호자는 강아지를 선택할 수 있지만 강아지는 보호자를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아지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주기 때문에 

나는 때때로  사랑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진다.


사실 동오와 함께하고 있는 지금 여전히 나는 매일매일 고민한다. 나의 부족함이 동오를 힘들게 하면 어쩌지?, 다른 보호자에게 입양됐다면 동오는 더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마음이 씁쓸해진다.


어쩌면 나와 함께하는 삶이 동오에게 완벽한 견생이 아닐지도 모른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 투성이에 도시에서 직장인 보호자와 함께 사는 법을 터득해야만 하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 시무룩한 기분이 들때면 동오를 데리고 처음 집으로 돌아올 때의 결심을 떠올린다.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하겠다고 늘 그래왔듯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동오와 함께하는 시간 내내 충분히 행복하겠다고 동오가 삶을 마치는 그날까지 가족이 되어주겠다고


나는 영영 완벽한 보호자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동오와 함께 살면서 동오가 자라는 만큼 나도 성장하고 있다. 

때로는 삶을 살면서 그 과정 자체로 충분한 것들도 있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견 동오야

너의 존재는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줘

나는 너로 인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너는 나로 인해 조금은 행복했으면 좋겠다.


동오 입양날 보호소에서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




수민

강아지 동오와 둘이 살고 있습니다.

본업은 기획자, 부캐는 동오 언니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instagram : sumsumi_n

동오

진도 믹스 시고르자브종 스트릿 출신 강아지

동네에 모르는 사람과 강아지가 없는 핵인싸견

하루에 두 번 산책해도 지치지 않는 개너자이저

유전자 구성이 다른데 왜 언니랑 성격이 같은지 미지수

@instagram : dogdong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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