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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늬 Aug 28. 2020

애는 없지만 육아 중입니다.

episode 6. 개육아..


저 엄마예요, 개엄마


흔히들 강아지를 키우는 것을 육아에 비유하곤 한다.

실제로 얼마 전 내가 봤던 미국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는 한 커플이 아이를 낳기 전에 자신들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강아지를 입양했다고 인터뷰하는 걸 보기도 했다. 그래서 누군가가 “실제로 강아지를 키워보니 정말 육아와 비슷한가요? “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네”라고 대답할 수 있다.

물론, 나는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낳아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육아와 개 육아를 완벽히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동오를 키우면서 나는 엄마의 마음을 더 이해하게 됐고, 엄마가 나에게 했던 행동들을 동오에게 하기 시작했다.


더운 여름밤, 엄마는 늘 자고 있는 내 방에 새벽녘쯤 들어와서 내가 잘 자고 있는지, 더워서 땀은 안 났는지, 선풍기 바람이 너무 세지는 않은지 이불은 잘 덮고 있는지 등을 체크하곤 했다.


나도 매일 잠이 들기 전에 동오가 덥지는 않은지, 선풍기 바람은 잘 가고 있는지,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는지 체크하는 버릇이 생겼다.


예전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지인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결혼은 안 해도 애는 꼭 낳아봐.”

“애를 낳아보면 세상이 달라져, 나도 달라지고,

막 인류애 같은 게 생긴달까?”

“처녀시절에 나 알던 사람들은 지금 나한테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냐고 물어보더라고.”


그때는 이게 무슨 말인가 했던 말들이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한 현시점 왜 그렇게 공감이 되던지

내가 개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적어보자면 아래와 같다.


1. 육아를 하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육아를 하면서 느끼는 감정이야 정말 다양하겠지만,

초보 엄마로서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을 꼽아보자면 죄책감일 것이다. 예를 들어 동오가 갑자기 아프거나, 컨디션이 나빠지는 날에는 꼭 내가 아픈 것처럼 마음이 불편하고, 내가 진짜 좋은 보호자가 맞는지 의심하고 자책하게 된다. 내가 애한테 신경을 못써줘서.. 내가 부족해서 내가 뭔가를 잘 못해서 동오가 아픈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날에는 정말 울고 싶어 진다.


옆에서 아무리 네 잘못이 아니라고 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위로해줘도, 혼자서 의기소침해져서는 내가 부족한 점들만 떠오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지는 것이다. 자식한테는 주고 또 주어도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게 부모 마음이라더니, 내가 동오에게 느끼는 감정이 꼭 그렇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지만 여전히 동오에게 나는 부족한 보호자고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길 때면 느껴지는 씁쓸함은 어쩔 수 없다.  


2. 진짜 엄마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첫 번째로 팔불출이 된다. 별것도 아닌 동오의 개인기에 크게 감격하거나, 다른 강아지들도 똑같이 하는 행동인데 유독 동오만 특별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엄마들이 흔히 “어머 아무래도 우리 애가 천재인가 봐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 강아지는 천재인가 봐요, 우드스틱을 이렇게 두 손으로 잡고 뜯다니!” 와 같은 말을 실제로 아무 부끄럼 없이 내뱉게 된다.(ㅋㅋ)


두 번째로 내 강아지는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로 세상에서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엄마뿐이다. 나는 이제 동오 걸음걸이만 봐도 동오가 똥을 싸고 싶은지 오줌을 싸고 싶은지 알게 되었다. 동오는 낑낑거리거나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으로 의사표현을 하는데 낑낑거리는 소리와 눈빛만으로도 지금 산책을 나가고 싶다는 건지, 간식을 달라는 건지, 놀아달라는 건지를 구분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동오는 내가 제일 잘 안다.  


세 번째로 외모에 신경 쓰는 시간이 월등히 줄었다.

외모에 신경 쓴다기보다는, 거울을 쳐다보거나 공들여 화장을 하거나, 옷에 신경 쓰는 시간이 줄었다고 하는 게 맞다. 관심이 없어져서라기 보다는 시간이 없어서 그렇다. 내 할 일 다 하고 동오 케어하는 것만으로 하루가 다 가기 때문이다. 당장 더러워진 집 청소를 해야 하고, 동오 산책을 시켜야 하고, 밥도 물도 챙겨 먹어야 하고, 동오랑 놀아주기도 해야 하는데 도대체 내 얼굴을 오랫동안 들여다볼 시간을 낼 틈이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지금 내가 제일 예쁜 것 같다. 사랑받고 자란 애들한테는 뭔가 반짝반짝한 게 있는 것처럼 지금 나는 화장을 안 해도, 옷을 이상하게 입어도 반짝반짝 빛난다.(우리 집에는 나만 사랑해주는 귀여운 아가가 있거든!! 훗-!)


3.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한 존재가 생겼다.


우리 엄마의 나에 대한 사랑은 각별한 편이다. 그런 엄마가 나한테 가장 자주 하는 말 세 가지


“어디서 이렇게 예쁜 게 나왔을까”

“엄마가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은 너를 낳은 거야”

“오구 내 새끼 또는 오구 우리 강아지”


이 세 가지 말은 내가 동오에게 제일 자주 하는 말이다.


“어디서 이렇게 예쁜 강아지가 왔어”

“동오가 내 곁에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오구 내 새끼~”


나는 엄마의 저 말들이 참 좋으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이 저릿했다. 누군가에게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이 나라는 존재 그 자체라니 그 사실이 행복하기도 했지만 그 말을 하는 엄마의 인생에는 오직 가족밖에 없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동오를 키우고 나니 엄마의 저 말들이 더 이상 슬프지 않게 되었다. 내가 동오로 인해 행복한만큼 엄마도 나로 인해 많이 행복했겠구나. 다행이다, 엄마 인생에 그런 존재가 하나쯤 있어서, 엄마가 덜 외로웠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장난꾸러기..(이앙마!) 동오
산책 중인 동오


좋은 보호자와 좋은 부모는 종이 한 장 차이


나는 좋은 보호자와 좋은 부모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을 키우는 게 강아지를 키우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겠지만, 좋은 보호자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부모로서의 자질 또한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형욱 훈련사와 오은영 박사님을 비교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대중들에게 반려 생활과 육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오은영 박사는 어린아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정서를 고려하면서 아이를 교육해야 한다고 가르쳤고, 또 훈육과 폭력의 차이 등을 대중적으로 알렸다. 강형욱 훈련사는 반려견을 감정과 마음이 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대중적으로 확장시켰고 산책, 훈련 등의 필요성을 알렸다. 가장 큰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아이나 강아지를 교육하려고 하면서 부모나 보호자를 교육시켰다는 점이다.


사실 아이의 문제행동이 부모로부터 비롯되듯이 강아지의 문제행동 또한 보호자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많고, 성견의 경우 2-3살 어린아이의 행동과 매우 비슷한 행동을 취한다는 점도 부모의 자질과 보호자의 자질이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강아지를 키우면서 느낀 좋은 보호자 또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은 다음과 같다.


1. 달콤함이 아닌 단호함


오은영 박사가 TV에 나와 아이를 훈육할 때 가장 중요한 태도는 ‘Firm and Warm’이라고 한 적이 있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단호하게 ‘노’라고 말하되 절대 공포를 조장하거나, 폭력을 가해서는 안되며, 평소에는 따뜻하고 다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강아지를 키울 때도 분명히 적용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많은 보호자들 특히 소형견을 키우는 보호자들의 경우 특히나 강아지의 모든 행동을 다 용인해주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소형견이기 때문에 입질이 있더라도, 또는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더라도, 사고를 치더라도 본인이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좋은 보호자는 자기 강아지의 안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안위를 위해서 안 되는 것에는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이건 내가 가장 잘 못하는 부분 중의 하나다. 동오가 나한테는 너무 소중하고, 덩치는 커져도 내 눈에 동오는 아직 아가라, 내가 훈육할 때 시무룩해지거나 스트레스를 받아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약해지곤 하지만 동오가 다른 강아지들과 또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더 강해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2. 통제가 아닌 믿어주기


이건 강아지를 키우거나 아이를 키우거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통제하는 부모나 보호자 밑에서 자란 아이나 강아지는 외부 상황에 대한 적응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강아지가 다른 강아지나 다른 사람에게 공격성을 보이거나, 외부 환경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보호자가 강아지를 어렸을 적부터 너무 과잉보호했거나 모든 상황을 통제하려고 했을 경우가 많다. 이건 동오를 키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가장 잘 지키려고 노력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동오를 데리고 산책을 할 때 그리고 동오를 데리고 애견카페를 갈 때 내가 지키는 기본 원칙은 이거다. 동오의 안위에 문제가 있거나, 동오가 다른 강아지 또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경우가 아니라면 동오를 믿고 동오가 하고 싶은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놔둔다. 만약, 동오가 다른 강아지나 사람에게 피해를 줄 만한 행동을 한다면 그때는 동오를 통제하고 적절히 대처하는 것이 맞지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동오가 스스로 탐색하고 그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뒤에서 지켜보는 편이다. 아이를 키울 때도 아이가 자립심을 가질 수 있게 믿어주는 것은 부모로서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100% 신뢰하는 아이는 무슨 일을 하든 자신감이 넘치고 두려움이 없는 아이로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3. 긍정적인 타협하기


아이를 키우거나 강아지를 키우는 데 있어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부모로서 또 보호자로서 아이가 그리고 강아지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지 못할 때 가장 슬프고 또 힘들다. 나만해도 동오를 위해서 넓은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지만 그럴 형편이 되지 않기 때문에 산책을 자주 시켜주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돈 열심히 벌게 동오야 ㅠ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자책하면서 주저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나 스스로 또는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순간이 수도 없이 많지 않은가 강아지를 키우고 또 아이를 키우면서는 더 많은 타협을 해야 하는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이 타협이 포기와 체념이 아닌 긍정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아이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 아닐까? 워킹맘으로 일하는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다. 회사에 가는 엄마를 보고 가지 말라고 엉엉 우는 아이에게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는 널 정말 사랑하지만, 엄마가 필요한 곳이 또 있어,

네가 엄마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회사에도 엄마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그래서 엄마는 가야 해

엄마는 00이 엄마기도 하지만 할머니 딸이기도 하고, 또 회사원이기도 하고, 아빠의 부인이기도 하잖아

그래서 엄마는 너를 사랑하는 것만큼 할머니도 사랑하고 아빠도 사랑하고 그리고 회사에서 일하는 엄마도 사랑하거든 그러니까 00 이가 이해 좀 해줄래?”


이 이야기를 듣고 아이도 눈물을 그쳤다고.

나는 이 대화에 ‘돈’ 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좋았고 또 아이에게 상황을 이해시키고 양해를 구하는 태도에 놀랐다.


대부분 아이가 “엄마 어디가?”라고 물으면,

“(한숨 쉬며) 돈 벌러 가 그래야 너 옷도 사입하고 밥도 먹이고 하지”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대답은 뭔가 부정적인 느낌을 들게 한다. 엄마는 일하러 가고 싶지 않지만 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는 거야 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대답은 긍정적이다. 저런 대답을 듣고 저런 마인드를 가진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라면 분명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고 무슨 일이든 열심히 잘할 수 있는 아이로 자랄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실 강아지를 키우면서, 워킹맘을 엄청 존경하게 되었다.

강아지 키우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아이를 키우면서 어떻게 회사일도 저렇게 잘 해내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강아지와 함께 사는 건 보통일이 아니다.

(절대 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동오를 키우면서 자질이 없는 사람이 강아지나 아이를 키우면 얼마나 불행해지는지도 알게 되었다.


남들도 다하니까, 사랑스럽고 귀여우니까 이런 단순한 마음으로 생명을 맞아들이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명을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헌신을 필요로 하고, 생각보다 많은 책임감이 필요하며, 본인이 원하지 않는 것과 타협해야 하는 일도 종종 생기기 때문에 그렇다.


나는 정말이지 좋은 보호자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 더 나아가서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내가 좋은 부모가 될 상인가...)


친구가 너무 좋은 동오
뭘 봐?




수민

강아지 동오와 둘이 살고 있습니다.

본업은 기획자, 부캐는 동오 언니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instagram : sumsumi_n


동오

진도 믹스 시 고르자브종 스트릿 출신 강아지

동네에 모르는 사람과 강아지가 없는 핵인싸견

하루에 두 번 산책해도 지치지 않는 개너자이저

유전자 구성이 다른데 왜 언니랑 성격이 같은지 미지수

@instagram : dogdong5



언제부터 "건강 조심하세요."라는 말이 인사말이 되어버렸네요. 지치고 힘든 나날이지만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는 마음으로 저는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일에만 집중하려고 합니다. 오늘도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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