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고독해지고 싶은 순간이 다가올 때면 대화 거부의 의미로 이어폰을 낀 채 그녀의 눈을 피하곤 했다. 혼자이고 싶은 마음을 그녀는 알까. 흠, 아무래도 상관없다. 여행에서의 나를 보여 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가 조금은, 아니 많이 편안해졌다. 그녀의 방에 들어설 때 그전보다는 덜 조심스럽게 방에 드나들 수 있는 정도로. 그녀가 좀 여유로운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그녀의 마음이 그랬으면 좋겠다.
2017. 6. 20, 00:09 AM
투어를 떠나기 전부터 많은 일이 일어나는 하루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관 심 없던 가이드 투어를 신청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
투어를 떠나기 며칠 전부터 날씨 앱에 뜬 ‘흐림’이라는 단어는 바뀔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아침에 있었던 캐리어 소동으로 마음 한구석에 먹구름이 낀 채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여기는 이렇게 화창한데 두 시간 거리인 그곳은 정말로 ‘흐림’이냐며 그녀에 게 들리지 않게 속으로 연신 투덜댔다. 네바다주에 들어서니 화창했던 하늘에 거짓말 처럼 점점 구름이 스며들어 왔고, 후버댐을 지나 그랜드캐니언 근처 인디언 마을에 도착하니 정말 아침의 하늘과는 다르게 검은 구름이 하늘을 꽉 채웠다. 저 멀리 들판에서는 겁나도록 쏟아지는 비 기둥마저 보였다. 별을 봐야 한다던 가이드도 언제부턴가 계속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마음을 그득 안고 그랜드캐니언에 도착했다.
광활하고 또 광활한 그곳을 앞에 두자, 별을 걱정하는 마음은 조금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굴러서 바닥에 맞닿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며 호기심 그득한 마음으로 발밑에 그리고 머리 위에 펼쳐진 자연의 마법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멋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강렬하게 마음에 와닿았다. 그림 같았다. 바람은 거세었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도 아니었지만, 조금은 날카롭게 펼쳐진 저 하늘 도화지 위 어둑하게, 제멋대로 펼쳐져 있는 구름이 어쩌면 오늘과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처럼 비가 쏟아졌고, 그랜드캐니언 구경마저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비를 피하기 바빴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같은 투어팀 사람들과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더러 꼭 뭔가 될 것 같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괜시레 용기가 났다. 한참 이 야기를 나누다 보니 화가 난 듯 내리던 비가 그쳤다. 날씨는 조금 심통이 풀린 듯했지 만 아름답기 그지없을 것 같았던 그랜드캐니언의 일몰도, 너무 눈이 부셔 잠들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미서부의 밤하늘도 볼 수 없었다. 깨끗한 공기와 먹구름 새로 보이는 빨간 노을 그리고 가방에 든 맥주 4병을 위로 삼아 캠핑장으로 향했다. 어느새 져 버린 해를 뒤로하고 그래도 조금은 떴으면 하며 별들을 기다렸다. 흥겨운 음악에 백 년 만에 먹는 듯한 삼겹살과 된장찌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맥주인 ‘블루문’(Blue Moon) 그리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투어팀 사람들까지, 조금밖에 뜨지 않은 별을 제외한 모두가 나를 위로해 주었다.
조금의 취기를 빌려 하늘에 별을 그려 보았다.
오늘을 되돌아보니 생각보다 괜찮은 하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랜드캐니언과 너무 잘 어울렸던 거친 하늘도, 차만 타면 잠이 드는 그녀마저 잠들지 못하게 한 먹구름, 그 새로 보였던 새빨간 빛도 그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까. 멍 때리고 바라보던 그녀 에게는 그저 신기한 세상이었을지 아니면 그녀가 그렸던 도시의 모습이 아닌, 광활하게 끝없이 펼쳐진 것들이 그녀의 인생에 생기를 불어넣을 어떠한 것이 됐을지.
뜻밖의 멋진 인연들이 건네준 응원의 메시지도, 가이드와 나눈 모든 이야기도 지나 버린 후회를 내려놓게 만드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하나도 기대하지 않았던 1박 2일 투어의 하루가 흘러갔다. 듣기 좋은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온다. 숨 막히게 더운 라스베이거스를 떠나 맡는 이곳의 차가운 공기가 고마울 따름이다. 바다 멀리서부터 기대했던 그랜드캐니언의 빛나는 밤하늘을 보지 못한 밤, 끝내주게 멋진 사진 한 장보다 훗 날 나를 지탱시켜 줄 마음의 근육을 얻었다.
2017.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