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책장을 넘기다 나는 왜 이리 여행에 집착을 하는 건지.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여행을 갈망하는 건지. 왜 이렇게 여행을 못해 안달이 난 건지 생각해봤다.
한참 여행에 미쳐 돈을 벌면 버는 대로 족족 여행을 떠나는 내게 엄마는 말했다.
‘그렇게 큰 짐가방을 메고 밥도 못 먹고 사고 싶은 것도 못 사고 불편한 데서만 골라서 잠을 자는데 여행이 뭐가 그렇게 좋니? 가서 그렇게 돈 없이 살 거면 차라리 짧게 다녀오지 기간은 왜 길게 떠나는 거야 도대체. 엄마 아빠 걱정하는 건 생각 안 해?’
그런 엄마에게 아빠는 항상 그냥 내버려두라는 말을 해왔고,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여행 가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면 그게 젊은 애 여행이야? 휴양이지. 나는 가서 고생은 좀 하는 게 좋아.’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참 웃긴 대답이었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사고 싶은 거 사고 먹고 싶은 거 사는 게 여행일 수도 있을 텐데 나는 왜 저런 대답을 했을까.
여행에서의 기억들은 모두 철저한 과거기 때문에 결국 미화가 되기 마련이다. 난 내 앉은키보다 더 큰 가방을 등에 들쳐 메고 내가 제일 아끼는 물건들이 들어있는 또 다른 백팩 하나를 앞으로 메곤 여행을 떠난다. 제일 무게가 많이 나가는 카메라를 하나만 들고 다녀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생애 처음 떠나는 유럽여행에서 필름 카메라를 놓고 갔던 일이 내가 여행을 하면서 한 제일 큰 후회라는 생각 때문인지 카메라를 하나만 들고 떠나는 건 불가능해졌다. 내 욕심이지만 별수 없었다. 내가 좋다는데 어쩌겠나.
30도가 웃도는 더위에도 영하 40도가 웃도는 추위에도 나는 항상 고생을 찾아 하는 사람처럼 교통수단보다는 내 두 다리를 택했고, 빠른 기차보단 느릿한 버스나 전철을 택해왔다. 한 번쯤은 맛집을 검색해볼 만도 한데 저렴하면서도 맛이 좋은 현지인이 추천해주는 식당을 선호했다. 먹고 싶은 게 생길 때면 다음날의 점심과 저녁의 캔맥주 개수나 안주 등을 포기해야 했고, 사고 싶은 게 생길 때면 ‘아냐 참자 저거 없어도 괜찮아. 그리고 나는 저걸 사러 이곳에 온 게 아냐’라고 주문을 외웠다.
특별하게 유난을 떠는 날에는 조금 우울하기도 했다. 아니 사실 많이 우울했다. 내가 이러려고 여길 왔나. 저 사람들은 저걸 살 수 있는데 나는 왜 못살까. 저 사람들은 저렇게 웃고 있는데 나는 왜 내가 좋자고 온 이곳에서 웃지 못하고 이렇게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왜 굳이 나의 한계를 보고 있는가 싶기도 했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밉기도 했다. 그래도 혼자 떠나는데 어떻게 이렇게 금전적으로 도움을 하나도 안주나 싶었다. 물론 특별하게 유난을 떠는 날에만 그랬다. 원래의 나라면 떠나는 날 엄마 아빠가 돈은 줘도 안 받았겠지만 말이다. 저렇게 힘들고 자존감도 낮아지고 외로운 낯선 곳에서 나는 어떻게 여행을 해왔고, 그곳에서의 어떤 것들이 나를 이렇게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내내 힘들다 올라탄 기차였다. 가오슝에서 타이베이로 가던 그 기차의 풍경을 보면서 나는 이게 한 나라가 맞나 싶은 생각을 하면서 그림 속을 달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곤 노래를 듣다가 펑펑 울어버렸다. 일월담에서 마주한 새벽의 호수는 또 어떤가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인기척이 들리자 방에서 뛰쳐나와 조심히 안녕히 다녀오라는 집주인 아주머니의 마음도 고요했던 그곳의 숨소리는 답답하고 텁텁한 서울 생활을 하다 보면 심심찮게 그립기도 하다. 해가 길어지는 시간에 바라본 스페인 말라가와 그 시간과 노을 녁의 틈 바구니에 담겨 있는 바닷가의 풍경은 아마 평생 내가 마주했던 어떠한 시간보다 아름다웠을 거다. 하나하나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정도로 여행지에서의 특별한 기억들은 나를 어쩔 때는 추억에 잠기게 만들고, 눈물짓게 만들기도 했으며, 길을 걷다 피식 미소 짓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내내 힘들다가 마주한 것들이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것들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줬고, 나의 진짜 웃는 얼굴을 찾게 해 줬다. 그리고 어쩌면 제일 중요한 건 낯선 곳에서의 인연이 아닐까. 큰 백팩을 두 개나 짊어지고 지나가는 동양인 여자아이를 보곤 많은 사람들이 건네주는 배려나 미소 그리고 응원을 나는 절대 잊을 수 없다.
_그렇게 보낸 긴 하루의 여행을 마치면 난 샤워를 하고 스케치북이나 아이패드를 가지고 게스트하우스에는 대부분 있는 ‘게스트의 공간’으로 간다. 냉장고에 사다 놓은 맥주를 가지고 그곳에 앉아 그날을 정리하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이내 몇몇 여행자들이 그곳으로 다가온다. 말을 걸어오는 이들도 있고 내가 말을 먼저 거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그들과 동화되고 정보를 공유하고 친구가 된다. 짧은 연이 될지 긴 연이 될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때만큼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여행자의 마음을 공감하고 나눌 수 있다. 그중 오랜 기간 알아온 여행자는 타국 함께 여행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여행은 내게 많은 무언가를 만들어 주었다.
낯선 곳에서 힘든 것들을 견뎌내고 그래서 힘들어질 대로 힘들어진 몸과 마음으로
이유모를 눈물이 나게 하는 풍경으로
지금까지도 그리울 정도로 고요한 그곳의 소리로
낯선 곳에서 더 빛나는 시간들의 많은 빛과 지친 밤, 시원한 바닷바람의 온도로
결국엔 살아있음을 느끼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알아차리는 거였다. 여행에서 난 어떠한 것의 높음과 낮음, 많음과 적음을 단기간에 자주 느낄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여행은 인생을 단축시켜 놓은 것이라는 말이 참 공감이 됐다. 이런 경험들을 가지고 있는 내가 좋았다. 특별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일. 그곳에서의 나를 경험하는 일. 각박하고 텁텁한 세상에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마음들이었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고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결국엔 나와 더 친해지고 나를 더 알아가는 것. 여행은 온전한 나를 위한 행위였다. 비로소 나는 여행이 지난 뒤에 여행을 돌아보고는 완전한 여행의 이유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