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당신의 꿈을 적어주세요.

2017년의 어느 날

by 느림주의자

복잡한 근래였다. 초 저녁에 자전거를 끌고 나가 열두 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달이 나와 함께 달려줬을 때는 숨통이 좀 틔었었는데, 집에 돌아오니 방안은 답답했고 표정 없는 공기만이 내 마음을 또 꽉 쥐어왔다. 한국에 돌아온 지 두 달 조금 지났나, 나는 언제 꿈을 이뤄내고 왔냐는 듯 또 그렇게 빡빡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꿈을 이루는 일이 이렇게나 허무한 일인 줄 알았다면 평생 꿈으로만 삼을걸 이라는 후회도 간간히 하며,


이른 아침, 쉬는 날인데도 눈이 번쩍 떠졌다. 자고 있냐며 들어오는 아빠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자는 척을 하고 말았다. 아무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하루 종일 조용히 책을 쌓아두고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가방 가득 책을 싸매 집을 나섰다. 날씨는 왜 이리 좋은지 이럴 거면 돗자리나 가져와서 한강에 갈걸 하고 생각하며 신호등을 건넜고 버스번호도 보지 못한 채 그냥 앞에 놓인 버스에 올라타 종점에서 내렸고, 나는 신촌에 도착했다. 우리 집에서 이대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던가. 조용한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 시켜 햇살이 잘 드는 창문 근처의 소파의자에 앉아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싶었는데 버스에 내리자마자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맘에 와닿지 않아 ‘버스 번호라도 볼걸’이라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골목길을 돌고 돌아 작은 카페 팻말 하나가 보였고 영업을 하는 건가 싶을 찰나 영업 중이니 문을 닫지 말아 달라는 문구를 보고 의심 없이 지하로 내려갔다.

열개 남짓한 테이블에 밝지 않은 분위기와 왠지 나긋한 노랫소리. 테이블마다 놓여있는 작은 스탠드와 알 수 없는 노트들. 벽 한편에 빼곡히 정리되어 있는 많은 종류의 책들, 그리고 향긋한 밀크티 냄새. 내가 바라던 햇살이 쨍하게 들어오는 창가가 없는 지하에 있는 카페였지만 왠지 이곳을 사랑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기자기한 메뉴판엔 오로지 밀크티 종류만이 가득했다. 밀크티라곤 아는 게 하나도 없었지만 그중 어렵사리 하나 골라 주문을 한 후, 책을 읽을 들뜬 마음과 함께 가방 속에 묵혀둔 책 그리고 안경을 꺼냈다. 괜스레 자유시간이 생겼다는 기분이 들어 어린아이 마냥 헤헤거리며, 아 냄새 참 좋다고 할 찰나, 스탠드 옆에 놓인 노트가 눈에 들어왔다.

‘당신의 꿈을 적어주세요.’

방명록인 줄만 알았던, 낙서장 인 줄만 알았던 그래서 가볍게 열어봤던, 그 노트들에는 누군가의 꿈, 목표, 희망과 또 누군가의 슬픔과 설렘, 좌절 그리고 기대 같은 것들이 적혀 있었다. 이를테면 일기 혹은 본인에게 쓰는 편지 어떠한 그런 것들, 어쩐지 눈물이 나버렸다. 가볍게 생각했던 노트 따위가 너무나도 무겁게 많은 청춘들의 삶을 담고 있었다.

온 세상이 내가 사랑하는 침엽수림이면 좋겠다고 내 자신에게 생떼를 부리며 살아온 근래였는데, 누군가도 이렇게나 슬퍼했고 이렇게나 기대했고 또 좌절했었구나, 한 장 한 장 노트를 넘길 때마다 모든 청춘들의 꿈이 내게 다가왔고 또 느껴졌고 구체적인 것은 달라도 우리 모두 행복하고 싶은 근본적인 마음은 우리 모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근본적인 생각은 바다같이 넓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꿈을 적었는데 내 꿈은 뭔지 모르겠다던 누군가, 비슷한 꿈을 가지고 있다며 공감이 된다는 누군가, 꿈을 이뤄 행복하다는 누군가, 또 꿈을 이뤘지만 마음이 허전하다는 누군가, 그리고 또 많은 누군가.

무슨 말로 이 문단을 시작해야 할까, 너무 많은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향긋한 밀크티 냄새에 어둑한 분위기에 그리고 많은 이들의 꿈속에 헤매다 울어도 보고 부딪혀도 보고 왠지 조금 고단한 그리고 쓸쓸한 그런 오후였다. 잊지 못할 그런 오후,


잊지 못한 오후를 지녔던 날의 어두운 밤. 누군가의 말이 내 마음속에 또 박혀버렸다. 그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일이 아니면 가슴이 뛰지 않는다고 그랬다. 나와 같았다. 그래서 또 눈물이 흘러버렸다. 종일 몇 번이나 우는지. 더 괜찮은 길을 찾아보라는 지인들의 말이 내 마음속에서 떠날 틈이 없던 그런 날들이었는데, 그래서 더 복잡한 근래였다. 이게 아니면 하고 싶은 게 없는데, 이게 아니면 사는 의미가 없는데, 왜 다른 걸 찾으라고 하는지, 내가 좋아하면 되지 않느냐고 수백 번을 외쳐봐도 돌아오는 차가운 공기는 바보 같다는 그 표정들과 함께 내 마음을 후벼 파곤 했다. 그래서 그들의 꿈을 보고 눈물과 미소가 함께 지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나와 같아서, 우리 모두 사랑하는 일이 있어서, 꿈을 바라보는 그들을 보니 동반자가 생긴 기분이랄까,


눈에 하루 종일 물기가 가득했다. 별이 보고 싶은 밤이었는데, 우연인지 내 맘을 알아챈 건지 그 물기 덕에 어둑해진 세상의 모든 빛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꼭 별처럼, 5년 전부터인가, 훗날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은 작은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항상 노래를 불렀다. 나의 꿈도 또 그대의 꿈도 모두의 꿈이 소중해지는. 어두워도 빛날 수 있는 그런 공간. 늦은 오후 그대들을 포근하게 감쌀 수 있는 꿈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그런 공간. 오늘 오후 내가 존재했던 그 공간에서 나의 꿈이 조금 더 내 마음속을 헤엄치게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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