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신혼 에피소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명절이 다가오면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다. 내 삶에서 기억에 남는 사랑의 아찔한 순간이며 나를 미소를 짓게 하는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인 이야기를 꺼내본다. 사랑이 섬뜩한 결과로 다가온 사랑의 밥상을 향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15여 년 전 신혼 때 이야기이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고 어두운 터널 같은 현실 앞에서 두려웠다. 그 불안을 꿈과 희망으로 극복하려고 발버둥 치던 그 시절, 우리 부부는 아담한 2층 주택 1층의 10여 평 남짓한 작은 월세방에 살았다. 힘들었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 그리고 젊은 패기로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냈다. 결혼 한지 얼마 안 된 어느 토요일 오전 와이프가 맛있는 음식을 해주려고 좁은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새벽에 아르바이트 후 피곤함에 방에서 졸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뻥 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들려서
눈을 뜨고 부엌을 쳐다보니
냄비에 불이 치솟고 있었다.
너무도 놀란 마음에 화장실에 물을 받아서 치솟은 불을 향해 힘껏 뿌렸다. 이 행동이 앞으로 일주일을 고생할 시작임을 전혀 모른 채 또다시 물을 뿌렸다. 불이 물을 만났을 때 연기가 치솟는다는 것을 떠올릴 때쯤 벌써 연기가 부엌 천장을 타고 방과 화장실 문 앞 천장까지 시커멓게 뒤덮었다. 그제야 와이프에게 다치지 않았는지 물어보았다. 다행히 별 다른 피해는 없었다. 놀라서 토끼눈을 하고 얼어있는 와이프를 보면서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자초지종을 듣고 있으려니 너무 기가 차서 웃음만 나왔다.
새벽 4시에 출근해서 아르바이트를 다녀온 오전 10시 30분쯤으로 되돌아가 보자. 2004년 1월 11일에 결혼했으니 구정을 얼마 남기지 않은 추운 겨울 냉동, 냉장 해산물 다루며 힘들게 새벽 아르바이트를 다녀온 나에게 사랑이 담긴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아마 전날 회사 퇴근하면서 혼자서 장을 보며 즐거워했으리라.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는 나에게(현재는 기름진 음식 덕에 고혈압, 고지혈증으로 고생 중이다.) 맛있는 고구마튀김, 야채 튀김을 해줄 요량으로 안사람은 내가 오는 시간에 맞춰 튀김 준비를 해놓았다. 내가 방에서 졸고 있을 때 와이프는 얼마 전 시장에서 산 양은냄비에(좋은 냄비 놔두고 와이프는 얇아서 빨리 될 거라는 생각에 양은냄비를 골랐다고 한다.) 기름을 가득 붓고 가스를 켰다. 그리고 결정적인 행동으로 냄비 뚜껑을 덮었다.
‘아! 이게 무슨 어이없는 행동이란 말인가!!’
양은 냄비 안에서는 화난 기름들이 부글부글 끓었고 그 화난 기름은 불로 변신함과 동시에 뚜껑을 뻥하고 걷어차며 불길이 치솟았다. 냄비로 들어가려던 밀가루와 계란을 뒤집어쓴 고구마와 야채는 아마 '휴 살았다'라고 외쳤을 것만 같은 낭만적인 생각이 문뜩 떠오르지만 그 당시에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간이었다.
와이프에 대해 간단히 말해보면 무남독녀에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애지중지 키우셨다. 결혼하고 알았지만 집안일은 하나도 할 줄 몰랐다. 지금은 결혼 15년 차에 뭐든지 뚝딱해내는 슈퍼우먼이지만 이때만 해도 장모님이 일주일에 한두 번씩 오셔서 청소랑 빨래를 해주실 때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와이프가 오직 사랑으로 기름을 넣고 양은냄비 뚜껑을 덮은 것이다. 집안일을 배우는 과정 속에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기에는 기름을 끓이는 냄비에 뚜껑을 덮은 행동은 너무 위험하고 그 결과는 비참했다. 가장 큰 문제는 벽지가 시꺼멓게 되었다는 것이다. 집주인이 우리가 이사 오기 전 가장 저렴한 바르는 벽지를 발라놓았는데 천장이 온통 시꺼멓게 된 것이다.
벽지를 다시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와이프와 놀란 가슴을 다독이고 가까운 마트로 가서 먼저 바르는 벽지를 구매하고 점심을 먹었다. 와이프는 너무나 놀란 마음과 나에게 미안한 마음에 식사 중에 아무 말이 없었다. 밥 먹는 동안 나는 안사람에게 괜찮다는 말과 미소를 지었다.
‘전날부터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튀김과 반찬들이 순식간에 날아갔으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온통 천장을 시커멓게 했으니 새벽부터 밤까지 알바와 일을 병행하는 나에게 벽지 바르는 일까지 안겨줬으니 또 얼마나 속상했을까? 이런 와이프의 마음이 공감되어서 그날 먹지는 못했지만 허공으로 날라 간 사랑의 밥상은 내 맘속 깊은 곳에 항상 남아있다.
나는 일주일 동안 벽지를 발라서 천장을 하얗게 만드는 데 성공했고 와이프는 튀김기를 구매했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와이프는 집안일과 관련해 장모님과 시어머니에게 물어보고 하는 버릇이 생겼다. 인터넷의 힘으로 현재는 집안일 베테랑이 되어서 장모님과 시어머니를 가르치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웃는다. 그리고 1년 뒤 대학원 진학과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 이사를 하였는데 집주인이 벽지를 보면서 한마디 하셨다.
“1년 전에 내가 바른 벽지와 다른 것 같은데?” 물론 우리는 모른 척하고 이사를 하였다. 지금도 가끔 1월이 되면 추억을 떠올리며 사랑의 감정을 따뜻하게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