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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원 Oct 29. 2020

내 안에 버튼을 찾아라

사람들은 누구나 이성을 잃고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는 버튼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버튼이 눌러지는 이유와 작동방식이 다릅니다. 버튼이 눌러지고 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쌓아왔던 상대방과 좋은 관계는 무너져 내립니다. 이후에 상대방과 관계를 회복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생각보다 꽤 오래 걸립니다. 후회하기도 하고 상대방을 탓해보기도 하지만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기에는 늦어버린 상황에 우리 마음은 혼란스럽고 아픕니다. 내 안에 버튼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입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이 경험은 제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책가방을 챙기면서 조그마한 알림장에 적힌 숙제를 확인하고 내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제 인생에 처음으로 숙제를 못했던 그 날에 나는 먼저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엄마 나 숙제를 못했어. 어떡해."


엄마는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에게 전화해줄 테니 어서 학교가 주원아."

걱정이 되었지만 엄마의 말은 저에게 안도감을 줬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와 아빠는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존재였으니깐요.


학교에 도착하고 수업 시작 종이 친 후 저를 정말 이뻐해 주시던 40대 초반에 여자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숙제 안 한 학생들 앞으로 나와."


두려움이 휘몰아쳤지만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앞으로 나가는 모습에 무언가 모를 위안을 받으며 뚜벅뚜벅 걸어 나갔습니다. 50명이 훨씬 넘었던 반 학생들 중에 삼분의 일 이상의 친구들이 나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주원이는 저기에 서있어"라고 말했습니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제 기분은 두려움과 안도감이 교차하며 긴장된 모습으로 서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언제나처럼 손등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 친구들을 한 명씩 때렸습니다. 특이하게 선생님은 손바닥이 아니라 우리들 손등을 내밀도록 하고 지휘봉처럼 생긴 몽둥이로 때렸습니다. 그리고는 1번부터 교과서 한 페이지씩 읽으라고 지시하시고는 저를 데리고 교무실로 갔습니다.


그 당시 우리 학교는 줄반장처럼 지도위원이 8명 있었습니다. 제 왼쪽 가슴에는 천으로 된 밝은 청색 이름표 밑에 옷핀으로 연결된 노란색 지도위원 천 배지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 배지가 자랑스러웠고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학교를 다니는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런 노란색 지도위원 배지를 떼서 큰 가위로 싹둑싹둑 자르고 계셨습니다. 1번 싹둑 2번 싹둑 3번 싹둑 잘게 잘게 계속 자르시면서 제 눈도 보지 않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넌 지도위원 자격이 없어.", "이렇게 숙제도 안 해서 어떻게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니.", "앞으로도 숙제를 안 할 거니?", "선생님과 약속을 이렇게 어기면서 무슨 지도위원이라는 거니." 이런 내용에 말을 강한 경상도 억양으로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나는 어쩔 줄 모르고 공황상태에 빠졌습니다. 나를 이뻐하시던 선생님이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내가 감당하기 힘든 공포를 느끼게 했고 훌쩍훌쩍 울 수도 없을 만큼 내 몸을 경직시켰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자리 옆을 가리 키며 "무릎 꿇고 손들고 서있어."라고 말하시고는 교무실을 나가셨습니다. 저는 1교시부터 4교시까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선생님들은 이유를 물어보시고는 머리를 한대 쥐어박으며 똑바로 벌을 받으라며 호통을 치셨습니다. 어린 나에게 그 시간은 지옥과 같았습니다. 부끄럽고 후회되고 무섭고 졸리고 시간이 멈춘 듯 더디게 지나가는 그 상황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그날 나를 보내 놓고 선생님께 전화하셔서 이번 기회에 주원이 버릇을 단단히 고쳐놓아야 앞으로 숙제를 잊어버리지 않고 할 테니 선생님이 마음껏 야단치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엄마의 전략은 보기 좋게 성공했습니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숙제를 안 한 기억이 없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은 종종 말했습니다. "숙제도 잘하고 말도 잘 듣고 수업시간에 졸지도 않는데 성적이 왜 이 모양이니?" 전 공부 못하는 모범생이었습니다. 선생님뿐만 아니라 연장자가 지시하는 어떤 내용도 꼭 해가는 나는(충실히 하지는 않고 야단맞지 않을 정도로) 고등학교 때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을 입학하고 나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동아리 활동, 과 활동, 수업에서 조별과제 등 등 고등학교 때와 다르게 선후배들과 함께해야 하는 과제들이 늘어가면서 앵그리버드 같은 모습으로 변하는 무서운 나를 자주 발견하게 되었고 주변 사람들과 갈등이 종종 일어나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맡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있는 내 모습은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나는 이렇게 하는데 너는 왜 하지 않니?"


내 마음이 상대방에게 투사되면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강요하고 화를 내었던 겁니다. 화를 내는 나를 대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뭐 그런 일로 그렇게 화를 내냐고 오히려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성을 잃게 하는 내 안에 버튼은 서로 약속하고 하기로 한 일을 어겼을 때 눌러집니다. 나는 이렇게 약속을 지키는데 너는 왜 지키지 않냐며 눌러진 버튼은 이성을 잃은 또 다른 나로 변해버린 겁니다.

내 안에 버튼을 찾은 후로 지금까지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버튼은 나를 미성숙한 사람으로 만들고 공든 탑을 무너뜨려 내 삶을 엉망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각자가 살아낸 경험들 하나하나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을 만들어냅니다. 이유 없는 행동은 없습니다. 이성을 잃게 만드는 버튼은 자녀와의 관계, 친구관계, 부부관계, 직장동료관계 등 인간관계를 무너뜨리고 우리가 원하는 삶에 장애물이 됩니다. 미국 소설가 라와나 블랙웰이 말했듯이 나이가 성숙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내 안에 버튼을 관리하기 위한

첫 번째는 알아차림입니다. 이성을 잃는 자신의 모습에서 어느 지점에 어떤 상황에서 버튼이 작동하는지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과거 어떤 경험들이 버튼을 만들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상대방을 존중해야 합니다. 버튼은 가치관과 맞닿아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가 중요하듯이 다른 사람들의 가치도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며 눌러진 버튼을 성숙하게 다루어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부정적인 감정을 다룰 수 있는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버튼이 눌러졌다는 인식을 한 순간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내 감정은 무엇이지."

"무엇 때문에 버튼이 눌러진 거지. 상황을 살펴보자."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지."

"그렇다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보자."


한 문장으로 정리된 내용을 상대방과 소통해야 합니다. 버튼이 눌러진 감정적인 상황에서는 상대방과 소통할 수 없습니다. 내 안에 부정적인 오염수를 밖으로 던져버리기만 할 뿐입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 부정적인 오염수를 처리해주지 못합니다. 그 오염수는 자신의 것이 아니기에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상대방 때문에 생긴 부정적인 감정이 아닌 상대방에게 원하는 행동을 정중하게 말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은 내 감정 정수기에서 처리해서 내 보내야 합니다.


버튼이 눌러지면 맹수가 달려드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당신은 맹수가 달려드는 상황에 어떤 감정과 생각에 사로잡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도 이성을 잃고 덤벼드는 사람들을 종종 경험해보았을 테니깐...... 맹수가 되지 말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성숙한 사람이 되어 소통하도록 우리 안에 버튼을 오늘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자녀와 함께 엉킨 성적실타래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님 자신의 버튼을 찾고 관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에게 어떤 버튼이 만들어져 있는지 살펴보고 버튼을 누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자녀가 스스로 자신의 버튼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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