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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연 May 07. 2019

반년만의 퇴원, 또 하나의 졸업

썸 바디 헬프 미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이 주는 빠르게 지나갔다. 병원을 나가면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적어보기도 했다. 집에 혼자 있는 나를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반년의 시간은 내가 이곳에 적응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정신병원까지 적응을 하다니, 사람의 적응능력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퇴원 당일, 마지막 식사는 빵 식사였다. 금요일 아침에만 나오는 일종의 특별식. 무언가 조금 웃긴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병원 밥이 빵이라니. 병원에서 주는 빵은 그야말로 그냥 '빵 맛'이었다. 밖에 나가면 돈 주고도 사 먹지 않을 그런 빵. 하지만 병동에선 그것조차 특별식이었다.

 아침을 먹고 병실에 있자 주치의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그리고 퇴원 전 마지막 면담을 요청했다.


 “오늘 몇 시에 퇴원하시나요?”
 “오전 11시예요.”

 밖에 나가자마자 외식을 해보고 싶었다. 식판에 나오는 밥이 아닌 반찬과 국물. 그래서 일부러 점심시간 전에 퇴원을 하기로 했다. 원하는 시간에 맞춰 밖에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외래에 반드시 오셔야 해요. 퇴원이 끝을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퇴원보다는 긴 외박이라고 생각하고 다녀오세요.
학교도 졸업할 때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몰라요.
졸업하고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변화를 알게 되죠.
수연 씨도 그럴 거예요.
지금은 모르지만 나가서 지내보면 많은 것이 나아졌다고 느낄 거예요.”


 주치의 선생님은 퇴원을 시키면서도 내심 불안해하고 계시는 듯 보였다. 나는 그런 주치의 선생님을 뒤로하고 웃는 얼굴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주치의 선생님은 병실을 나서기 전 솔직한 마음을 꺼내고 가셨다.


 “사실 수연 씨가 더 많이 나아질 줄 알았어요.
더 밝아질 거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조금 아쉽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해요.
언제든지 다시 입원할 수 있게 해 놓을게요.
도망칠 땐 병원으로 오세요. 이번 입원은 여기까지예요.”

 주치의 선생님 말씀에 실감이 났다. 나 정말 퇴원하는구나.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병실의 큰 창도, 풍경도 모두. 그래서인지 한참 병실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처음 보았던 병실 풍경과 다르지 않은 건물과 하늘. 하지만 나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내가 도망칠 수 있는 곳. 보호받을 수 있는 곳. 그곳이 여기였다. 답답하기도 했지만, 조금은 그리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간호사실에서 외래 시간을 잡고 다시 병실로 돌아갔다. 병실에 있는 동안 간호조무사님이 병실에 들어와 말했다.


 “빠지는 거 없이 잘 챙겨요.
침상을 빨리 빼야 짐을 정리할 것 같아서 정리할게요.
퇴원 축하해요.”


 그러면서 내 침상을 빼기 시작했다. 정리 하나 하지 않고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럴 법도 했다. 병실은 내가 처음 들어왔던 날처럼 씌우개가 벗겨졌다. 나는 그제야 짐을 정리했다. 그동안 가져온 짐이 생각보다 많았다. 반년이나 병원에 있었으니 당연하다고 해야 할까. 결혼한 남편보다 병원에 있는 시간이 더 길었으니까.


 병실의 짐을 빼고 퇴원 절차를 밟는 동안 간호사님과 간호조무사님이 퇴원 축하한다고 얘기하며 인사를 나눴다. 다른 환자분들도 나와서 퇴원 축하를 했다. 모두의 축하를 받으니 주치의 선생님 말씀대로 꼭 졸업하는 느낌이었다. 이제 막 어른이 된 듯한 기분. 기쁘기도, 막막하기도 한 기분.


 사복으로 갈아입고 병동 문을 나섰다. 내가 돌아갈 곳은 병원이 아닌 집이라는 생각에 불안감과 홀가분함이 뒤섞였다. 이제 나는 나가고 싶을 때 나갈 수 있고 먹고 싶은 것을 직접 사 먹을 수 있고 혼자서 밖에 나갈 수도 있다. 매 시간에 맞춰 약을 주는 사람도 없고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던 신경 쓰는 사람도 없다. 그것은 자유이자 책임이었다.

 자유라는 것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생각을 했다. 정신병원은 자유롭지 않지만 그만큼 내가 가진 책임을 덜어줬다. 나를 보호해주었고 위험한 행동을 막아주었다. 이제 나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나였다. 내가 나를 지켜야만 한다는 것을 병동 문을 나서며 알게 되었다. 그것을 스스로 알았다는 것도 변한 내 모습 중 하나였다.


 2월의 공기는 맑았다. 처음 입원했을 때가 여름이었는데, 퇴원은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이렇게 긴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게 될 줄 몰랐다. 정말 한 달이면 당연하게 퇴원할 줄 알았는데. 나는 생각보다 시간이 더 필요한 사람이었다. 입원이 아니었다면 나아야만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했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곳은, 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 조금은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확실히 나아진 것을 부정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병원에 있는 동안 가족을 이해했고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찾았다. 아프다고 말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 사이에서 어울리고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작지만 큰 마음의 변화. 분명 나는 처음보다 조금 더 자란 사람이었다.


 다시는 입원하지 말아야겠다는 내 생각과 달리 그 뒤로도 나는 몇 번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겪어가며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어 나를 받아들였다. 사실 나는 지금도 치료를 받고 있다. 언제 다시 입원을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오늘의 일을 어떻게든 한다. 그래도 이제 아픔이 밉지는 않다. 나 자신을 통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아프기에 위로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앞으로도 함께 아픔을 나눌 수 있기를. 곁에서 지켜주는 사람이 되기를. 나는 아픔 속에서 나아지기보다 함께 살아가기로 했다.


*그동안 '썸 바디 헬프 미'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공감과 위로의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작가 이수연


*우울한 당신에게 위로와 공감이 될 글을 씁니다.*

*북 토크, 스피치 등 문의는 제안하기로 연락 주세요*

*새롭게 유튜브를 시작했습니다. 브런치, 유튜브 등에서 꾸준히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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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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