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라는 행운
어릴 적 어렴풋이 기억나는 몇 가지 장면이 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나무가 참 많았고, 하늘이 아주 잘 보이는 단순한 곳이었다.
더울 땐 나무 아래 앉아 있노라면 마치 나무가 “많이 더웠지?” 하며 시원한 그늘을 내어주었고,
혼자 있는 내가 심심할까 봐 바람이라는 친구도 함께 불러 주었다.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막 넘어가는 계절엔 저녁 노을이 정말 예뻤다.
북두칠성이 하루하루 자리를 조금씩 옮겨 가는 것도 밤하늘이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밤하늘을 바라보다 별똥별이 갑자기 떨어질 땐, 금세 생각나지 않는 소원도 빌었다.
“우리 집 옆에 슈퍼가 있게 해 주세요.” 아마 그런 소원이었던 것 같다.
재빠르게 소원을 빌어야 이루어질 것만 같아, 눈을 감고 두 손 모아 마음을 담았다.
파란 하늘, 키가 크고 작은 들꽃, 반짝이는 별과 은하수, 초록 풀내음, 소복이 쌓인 눈,
빨간 고추잠자리, 노랗게 익은 벼, 분홍 진달래, 노란 개나리,
깜깜한 밤에 잠깐 나타나는 반딧불, 여름날 무지개…
이 모든 것이 내 보물들이었고, 나의 전부였다.
별똥별이 그때의 어린 나의 간절한 바람을 들어주었는지,
지금 나는 정말 집 바로 옆에 큰 슈퍼가 있는 곳에서 살고 있다.
그때와 달라진 건, 훌쩍 커버린 내가
그 단순했지만 보물들로 가득하던 곳을 떠나, 이제는 제법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선 상대방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발달된 문명에 익숙해진 나는 느린 속도로 가지 말라고 스스로를 재촉하곤 한다.
아차 싶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아침마다 잠깐이라도 하늘을 올려다본다.
10초라도 멈춰 파란 하늘을 바라보면, 숨이 고르고 마음이 느려진다.
밥을 짓는 동안엔 그날 있었던 고마운 일을 하나씩 떠올리며 마음을 다독인다.
아침에 눈 떠 두 팔로 기지개를 펼 수 있음에 감사하고,
건강한 두 눈으로 푸른 하늘, 예쁘게 핀 꽃, 그리고 내 아이의 해맑은 얼굴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한다.
두 발로 일어나, 두 손으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두 귀로 새소리, 바람 소리,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오늘’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매일 받고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지,
딴 게 행운일까. 삶은 유한하다.
나는 오늘도 그 유한함을 기억하며,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려 한다.
저는 하늘을 자주 올려다봅니다. 여름 하늘에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건, 뜨거운 땅 위로 수증기를 머금은 공기가 힘차게 솟구치기 때문이라고 해요. 너무 덥고 습한 여름이지만, 계절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농작물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겠지요. 그러니 이 더위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좋아하는 구름이 여름에 더 많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