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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쓴 Oct 19. 2022

마라톤 뛰는 마음가짐으로

  서랍 정리를 하다가 예전에 받았던 마라톤 완주 메달들이 가득 들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날씨가 좋은 봄, 가을에 매년 습관처럼 마라톤에 참가했었다. 하지만 고시 준비하는 동안에 참가하지 못하고, 고시가 끝나니 코로나가 터져서 대회가 안 열리고 등 여러 가지 핑곗거리들이 겹치면서 거의 3~4년간 마라톤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동안 받았던 마라톤 완주메달, 기록증, 상장들과 창밖으로 화창한 가을 날씨를 보니, 예전 마라톤에 참가했었을 때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매번 마라톤 뛸 때마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지?'라고 후회하면서, 막상 완주하고 나서 느끼는 희열에 중독되었었다. 뛰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냥 조금 걸으면서 천천히 갈까?'라는 유혹이 들어도 나는 단 한 번도 마라톤을 하면서 중간에 걸어본 적이 없다. 한번 걷기 시작하면 걷는 게 편해져서 다시 뛰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천히라도 계속 뛰었다. 여러 번 참가 횟수가 쌓여갈수록 결승점에 도달했을 때 짜릿함이 크다는 걸 알기에 계속 뛸 수 있었던 것 같다. 뛸 때는 힘들어 죽을 것 같다 했었으면서 매번 다 뛰고 나서야 역시 뛰길 잘했다며 뿌듯해했었다.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빠르게 뛰어야 하는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오래 끊임없이 뛰어야 하는 것이기에 긴 호흡을 가지고 임해야 하는 인생과 비슷한 점이 있긴 하다. 비록 10km나 하프코스지만 마라톤을 여러 번 뛰어봤던 내가 느끼는 마라톤은 인생과 가장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내가 결승지점(목표)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느냐'의 차이다. 마라톤은 페이스메이커와 코스 중간중간에 표지판이 있어서 결승점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계속 점검하며 뛸 수 있다. (몇 킬로 뛰었는지 측정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 같은 기기 포함해서)  그래서 힘들어도 몇 킬로만 더 가면 된다며 힘을 낼 수 있다. 반면에 인생에서는 결승지점(목표)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릴지 알 수가 없다. 또한 아무리 뛰어도 목표지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결승지점 바로 앞에서 포기하게 되기도 한다. 언제 도달하게 될지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힘을 내기 어려운 것이다. 만약 마라톤 대회에서도 페이스메이커나 표지판 같은 게 없었다면 아마 더 포기하기 쉬웠을 것이다.

  힘든 일이 생겼을 때 극복하는 방법으로 흔히 시간이 약이라고 한다. 시간이 약인 것은 맞지만, 문제는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를 모른다는 것이 가장 괴롭다. 지금 힘든 일이 정확히 언제쯤이면 괜찮아진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다면, 힘들더라도 버틸 힘이 생길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뭘 하든 마라톤 뛰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면 못 버틸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라톤을 달릴 때처럼 "언젠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완주할 것이라는 믿음"과 "완주했을 때의 짜릿함을 상상하며 멈추지 않는 끈기"가 있다면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힘을 낼 수 있을 테니.

  요새는 뭘 하든 "일단 그냥 하자!"라는 생각이다. 마라톤 대회 나간 것처럼 결승점(목표)까지 몇 킬로가 남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정해놓은 결승점에 내가 반드시 도달할 것이라는 것은 안다.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도착할 것이다. 무얼 하든 마라톤 뛰는 마음으로 해보려 한다. 마라톤 뛰듯이 때론 좀 느리게 때론 좀 빠르게, 그래도 쉬지 않고 뛰면서, 땀을 닦아가며,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변 풍경도 즐기면서 계속 뛸 것이다.

  '다시 마라톤을 해봐야지'라고 '생각만'하고 있는 게으른 나를 위해, 다음 달 마라톤 참가 접수를 완료했다. 오랜만이니 가볍게 10km 코스로! 12월이나 1월이 되면 너무 추워지니 11월까지가 딱 좋은 때인 것 같다. 평일에는 주 3~4회 복싱을 하고 있으니 마라톤 대회전까지 토요일 오전에 연습할 계획이다. 오랜만에 하는 거라 좀 걱정이 되면서 또 한편으로는 신나기도 한다.

  이제 금방 겨울이 올 텐데 나는 매년 겨울이 오는 게 무섭다. 추위를 잘 타기도 하고, 날씨가 추우면 산책이나 자전거 등 내가 좋아하는 야외활동을 못 하게 되고, 또 겨울만 되면 잠이 더 많아지니 하루가 짧게 느껴져서 겨울이 싫다. 하지만 그래도 언제 겨울이었냐는 듯 금방 또 살랑살랑 바람이 부는 봄이 올 테니까 견딜 수 있다. 내년 봄은 언제 올지 모르지만 봄은 반드시 올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들이 언제 이뤄질진 모르지만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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