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오늘도 결국 운동을 하지 아니하고
육신의 편안함에 굴복해 버린 하찮은 나의 의지나부랭이에 캐묻는 통렬한 반성이자
그럼에도 매일 말로만 운동,운동,운동 지껄이는 아가리어터로 평생 살아갈까 두려운 미래의 내 몸뚱이에 보내는 강한 각성의 염원이다.
아무런 운동도 하지 않은지 어언 8개월 차.
하지만 운동을 끊어 놓은 건 1년 치 헬스장과 6개월 치 요가 수업 두 가지나 된다는 이 놀라운 모순.
기부 천사 주제에 욕심은 또 많다. 천사가 욕심이 많다는 이 놀라운 모순22.
그래서 나란 모순덩어리를 분석해 보기로 한다.
대체, 나란 인간은 왜 운동을 가지 않는가.
이유는 아주 논리적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었다.
1번.
운동을 안 한 지 8개월. 그사이 눈에 띄게 몸이 안 좋아지거나 체력이 약해졌는가?
놉. 똑같다.
똑같은 만성피로와 똑같은 덜그럭거림으로 살아간다.
천국의 계단을 30분 타고 토하면서 출근하나, 겨우 일어나 머리도 못 말린 채 토하면서 자차로 출근하나,
어차피 토하는 건 매한가지다.
그럼. 대체 왜 운동을 해야만 하냐는 거다.
2번.
그럼 운동을 했던 8개월 전. 그 시절 눈에 띄게 몸이 좋아지거나 체력이 올라갔는가?
놉. 똑같다.
비슷한 눈바디와 비슷한 자존감으로 살아간다.
5kg 더 들어 올려서 헐크가 되나, 일만 하다 사람 스트레스로 헐크가 되나
어차피 성질 포악한 헐크가 되는 건 매한가지다.
그럼. 대체 왜 운동을 해야만 하냐는거다.
잦은 밤샘, 혹서기 혹한기 야외촬영, 야식, 수면 불규칙.
이 바닥에서 체력이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는 게 아니라, 버텨야만 하니까 버티는 거다.
이 바닥에서 몸이란, 단 하루도 좋은 날이란 있을 수가 없는 거다. 모 선배가 그랬다. 아프니까 몸뚱이다.
그럼 뭐야.
결국 나에게 운동이란 해도 똑같고, 안 해도 똑같은 거라면
기회비용을 따지든, 비용 대비 효율을 따지든
결국 안하는 게 맞는 거다.
굳이?
고로 나는 오늘도 알람에 맞춰 눈을 떴다가 다시 잠들었을 뿐이다.
(논리적으로 자신감 있게 분석까지 해놓고도 알림 또 맞춰놓는, 이 또한 모순333)
나는 오늘 운동을 안 해도 크게 잃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운동을 하러 갔어도 크게 얻는 것 또한 없었을 것이다. 8개월째 그러했고,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사용하지도 않을 신상 운동복 광고에서 스크롤이 멈추고, 할인한다는 센터 전단지를 보면 결제 욕구가 샘솟고, 건강하고 멋진 몸으로 가득 찬 내 편집기 속 인물 면면을 보고 있자면 그 생명력에 감탄하게 된다.
운동하고 싶다. 운동할 거다.
운동, 해야한다.
어휴. 말이라도. 제발.
이렇게 운동, 운동, 운동무새가 된 이유는
내가 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건, 단순히 신체활동이 줄었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기 때문일 터다.
그 이상의 함의.
내가 나를 내려놓았다는 것.
내가 나 자신을 많은 부분에서 포기해 버렸다는 것.
일상을 유지하는 데만 너무 많은 에너지가 쓰여 눈에 뵈는 게 없고, 맘에 차는 게 없다는 정신적 빈곤의 바로미터.
정신이 굶주릴수록 되려 몸무게와 체지방량은 풍족해지는 이 놀라운 모순4444.
도리어 바쁘고, 일이 많고, 긴장해서 정신 줄 잡고 있을 때
시간 쪼개서 운동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회사 밖에서 재미를 찾게 되는 나다.
‘아, 개인적으로 샷따 내려야할 타이밍인가’ 싶은 지금과 같은 개점휴업인 상태일 때
오히려 운동도, 생산적인 일도,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모든 조건의 끈도 모두 놓아버리는 나란 새끼다.
차라리 이럴 땐
“죄송하지만 지금은 겨울잠 시즌입니다만, 절대 깨우지 말아 주세요. 삶의 일시 정지상태에요”라고 당당하게 샷따에 써 붙일 수 있는 깡따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말로는 ‘아 운동해야는데’, ‘아 책 좀 봐야되는데’, ‘아 새로운 취미생활 하나 해야는데’ ‘아 새로운 사람 좀 만나고 다니고 해야는데‘.
죄책감만 더해지고 개선의 여지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데는데는데무새.
그렇게 오늘 아침으로 벌써 8개월하고도 이틀째, “아, 운동 가야 하는데”하는 염불로 눈을 뜬다.
어쩌면 내일 아침으로 이미 8개월하고도 사흘째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눈 딱 감고 가주면 안될까.
어느새 올해의 절반이 다 되도록 겨울잠을 자버렸다.
반팔 입고 다니는 계절이 다 되도록 계절감 쌈싸먹고 겨울잠을 처자고 있는 이 놀라운 모순55555.
눈 떠, 밖은 여름이야 띠끼야.
덥다, 벌써.
지친다, 벌써.
그럼에도 난,
내가 나를 내려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래 봬도 추구미는 늘, 항상, 언제나, 오늘도, 운동해서 땀흘리고 출근하는 차가운 도시 녀자.
그래서 난, 상상한다.
내일 아침, 천국의 계단을 30분 타고 바빠 머리도 못 말린 채 토하면서 출근하는 나.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토하는 건 매한가지다. 그렇다면 둘 다 하고 토하면 되지.
제발. 운동하자 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