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결정하고 나서부터 마지막 근무일까지, 그리고 송별회를 통해 동료들로부터 고마운 마음의 표현을 정말 넘치도록 많이 받았다. 퇴사 결정부터 송별회까지 겨우 닷새. 너무 빠른 결정과 너무 빠른 이별에 서로 긴가민가했고, 마음 아프느라, 눈물 흘리느라, 고민에 잠 못 자느라, 걱정에 한숨 쉬느라 폭풍처럼 지나온 겨우 5일의 시간은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돌아보기에 나에게 너무 짧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공식 퇴사일이 다가오는 약 보름동안 매일 한 명 한 명 생각했고, 그들에게 보낼 내 마음을 정리했다.
10월 마지막 날, 진짜 퇴사일에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OO님, 잘 지내죠?
몰아닥치는 일상의 업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마음을 추스를 겨를조차 없이 하루씩 잘 지나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이러한 하루가 있기에 지나간 어제의 아쉬움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을 테니, 당연히 그래야 하고요.
이제 그 아쉬움도 마지막으로 접어내려고 이 메일을 써보아요.
몇 년 전부터 이곳이 저의 마지막 직장생활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회사를 그만둔다면 그건 곧 전업주부가 되는 길이며, 회사에서의 추억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다고 막연히 상상했던 그림이 있었습니다.
고마운 사람들에게 손 편지로 감사의 인사를 하고,
그동안 했던 업무들에 대해서 깔끔하게 매뉴얼도 준비하고,
꼰대력을 발휘하여 저 나름의 직장생활 노하우에 대해서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싶었습니다.
한 명 한 명에게 의미가 담긴 선물도 하고 싶었습니다.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을 깨끗하게 정리해놓고도 싶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퇴사를 결정하고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다는 서운함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무실에 안 나와도 된다는 말이 더 이상 나오면 안 된다는 말로 다가왔기에 한 발자국 더 사무실로 향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저의 선택이지만, 왠지 모르게 타의에 의한 선택이란 생각이 스멀스멀 자리 잡아 저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것도 있는 듯합니다. 이렇게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퇴사를 하게 되니, 제 상상 속 그림을 현실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네요.
오늘로써 제 인생 한 줄기를 마무리합니다. 인생은 항상 계획대로만 할 수 있지 않다는 걸 절절하게 깨닫는 기회였습니다.
직장인이 된 이후 지난 20여 년간 직장인이 아닌 모습을 위해 노력했던 점이 없었기에 막연한 게 사실입니다. 회사를 다니다 이직을 했고, 또 회사를 다니다 이직을 했고, 이렇게 이렇게 그저 똑같이 살면 된다고 안일했었나 봅니다.
이제 정말 다른 시도를 해보고, 몸으로 움직여볼 때인 것 같습니다.
제가 뭘 잘하는지 더 생각해 보고, 가족들에게 든든한 사람이 되도록 더 노력해봐야 하겠습니다.
제게 소중한 직장동료였던 선후배들에게도 든든한 사람으로 자리 잡도록 더더 노력해보려 합니다.
꼭!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소중한 사람들을 회사 밖에서도, 퇴사 이후에도, 제2의 인생에서도 만나야 하니까요.
한 명 한 명과의 추억까지 담아 메일을 보냈다. “SEND”
바로 E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며칠 지나고 각자 회복의 시간이 지나서인지 목소리가 반갑다. 이제 울컥할 일은 끝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