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SF 단편 - 공명(共鳴)의 부재

공명(共鳴)의 부재

by ToB

내 작업실 선반에는 이제는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물건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놓여 있다. 티타늄 합금부터 상아까지, 각기 다른 질량과 탄성을 지닌 스물네 개의 ‘조율 망치’. 나는 아직도 눈을 감으면 각각의 망치가 기계의 표면에 닿을 때 내는 미세한 소리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 티타늄의 맑고 높은 ‘팅-’ 소리는 나노 회로의 미세한 결함 중첩을, 묵직한 상아가 내던 ‘툭’ 하는 소리는 동력계의 거시적 확률 왜곡을 바로잡는 데 쓰였다.


우리는 스스로를 ‘기계 교감사’라 불렀다. 낭만적인 이름이지만, 우리의 일은 지극히 물리적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도시의 신경망이, 공장의 자동화 라인이, 혹은 당신 집의 낡은 레플리케이터가 ‘결함 중첩’의 안갯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호출되었다. 우리는 고장 난 기계 앞에 서서, 마치 의사가 청진기를 대듯 공명 센서를 대고 그들의 불규칙한 맥박—양자적 불안정성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진동을 증폭하여—을 들었다. 그리고 가장 적절한 망치를 골라, 수천 번의 연습으로 다져진 정확한 위치와 힘으로 외벽을 타격했다.


그것은 단순히 충격이나 두드림이라 폄하될 수 없었다. 우리의 타격은 불안정한 확률 구름 속으로 던져지는 하나의 닻이었다. 그 타격이 만들어내는 정직한 물리적 공명이 간섭을 풀어내고, 길 잃은 수억 개의 논리 게이트들에게 ‘여기가 현실이다’라고 알려주는 기준점을 설정해 주는 것이다. 성공적인 타격이 이루어지면, 기계는 마치 깊은 악몽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부르르 떨며 안정된 고전적 상태—‘정상 작동’—으로 붕괴했다. 그 순간 손끝으로 전해져 오던 안도감 섞인 진동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에겐 영광의 시대가 있었다. 최고의 교감사는 록 스타와 같은 대접을 받았다. ‘해결사’라는 별명을 가졌던 전설적인 교감사 ‘한스’는 어떤 시스템이든 단 세 번의 타격으로 복원시켰다. 그의 망치질은 하나의 예술이었고, 우리는 그의 영상을 보며 공명의 각도와 손목의 스냅을 연구했다. 그것은 지식과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기계와의 교감에 기반한 장인의 세계였다. 우리는 기계를 단순한 도구가 아닌, 때로는 달래고 때로는 단호하게 이끌어야 하는 변덕스러운 파트너로 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퀀텀 다이내믹스’사에서 ‘아우라-싱크(Aura-Sync)’를 발표했다.


그것은 혁명이었다. ‘아우라-싱크’는 물리적 타격 없이, 대상 시스템의 양자 상태를 원격으로 스캔하여 정확한 역위상 공명파를 방출했다. 망치질이 외과수술이라면, 아우라-싱크는 부작용 없는 초음파 치료였다. 더 이상 숙련된 장인이 몇 시간 동안 기계의 ‘비명’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앱을 켜고, 대상을 지정하고, ‘동기화’ 버튼을 누르면 그만이었다. 소음도, 진동도, 아무런 물리적 접촉 없이, 수십억 달러짜리 데이터 센터가 3초 만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우리의 시대는 그렇게 끝났다. 마치 필름 카메라가 디지털 카메라에 자리를 내주고, 비디오 가게가 스트리밍 서비스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듯이. 내 동료들은 하나둘 망치를 내려놓았다. 어떤 이는 아우라-싱크 사용법을 배워 ‘원격 동기화 기술자’가 되었고, 어떤 이는 아예 다른 직업을 찾아 떠났다. 우리의 정교한 망치 세트는 골동품이 되었고, 우리의 지식은 비효율적인 구시대의 미신처럼 취급받았다.


얼마 전, 손녀의 교육용 단말기가 계속 오류를 일으켰다. 나는 반사적으로 허리춤을 더듬었다. 물론, 망치를 차지 않고 다닌 지 10년도 더 지났다. 손녀는 내게 단말기를 건네며 말했다.


“할아버지, 그냥 ‘싱크’ 한번 돌려주세요. 또 구식 방법 쓰시려는 건 아니죠?”


아이의 눈에는 순수한 호기심만 있었다. 악의는 없었다. 그저, 왜 굳이 힘들고 오래 걸리는 방법을 쓰려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뿐이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내 개인 단말기에서 아우라-싱크 앱을 실행했다. 손녀의 단말기를 스캔하고, 동기화 버튼을 눌렀다. 1.7초 후, 단말기는 완벽하게 복구되었다.


손녀는 기뻐하며 단말기를 받아들고 제 방으로 뛰어갔다. 나는 텅 빈 내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거기에는 망치를 쥐었을 때의 묵직함도, 기계의 차가운 표면에 닿았을 때의 긴장감도, 성공적으로 공명을 이끌어냈을 때의 짜릿한 반동도 없었다.


우리는 젊은 세대에게 ‘최신 기술을 어떻게 믿냐’고 말하는 노인들을 ‘꼰대’라 부르며 비웃는다. 아마 나 역시 손녀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단순히 낡은 기술이나 방법론이 아니다. 내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관계’의 상실이다. 우리는 기계의 고장을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소리를 듣고, 만지고, 그들과 물리적으로 상호작용했다. 그 과정 속에는 실패의 좌절감과 성공의 희열이 있었고, 기계에 대한 존중심마저 깃들어 있었다.


이제 기계는 그저 버튼 하나로 상태를 바꾸는 추상적인 데이터 덩어리가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기계와 ‘씨름’하지 않는다. 그저 ‘명령’할 뿐이다. 효율과 완벽함 속에서, 우리는 기계의 표면에 손을 얹고 그들의 영혼(물론 영혼 따위는 없겠지만)을 느끼려 했던 그 원초적인 교감의 행위를 잃어버렸다.


아마 이것이 진보의 대가일 것이다. 모든 것이 매끄럽고, 빠르고, 쉬워지는 세상. 그 속에서 우리는 손에 굳은살이 박이는 과정의 가치를, 그리고 그 굳은살을 통해 전해지던 어떤 종류의 진실을 잊어버리고 있다. 내 낡은 망치 위에는, 단지 시간의 먼지가 아니라 한 시대의 공명이 함께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keyword
화, 금 연재
이전 01화SF 단편 - 873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