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겁
화성 탐사 기지 ‘오디세이’. 지구 시간 기준 연결 완료 후 2시간 5분.
의식의 귀환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얼어붙었던 강이 깨지며 쏟아져 내리듯이 고통스러운 해빙의 과정이 이루어졌다. 날카로운 얼음 파편이 뇌의 가장 깊은 곳을 헤집으며 감각의 홍수를 터뜨렸다.
그녀는 새로운 육체라는 그릇에 제대로 담기지 못하고 겉돌고 있었다. 활성화 시퀀스가 그녀의 새로운 뇌를 자극했을 때, 클라라의 첫 번째 '감각'은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류 보고'였다. 그녀의 의식 속으로, 시스템의 중립적인 음성이 생각처럼 피어올랐다.
[의식 재결합 완료. 감각 피드백: 비정상. 동기화 오류: 472 밀리초.]
그녀는 아직 눈을 뜨지도, 숨을 쉬지도 못했지만, 자신의 '자아'가 새로운 육체에 제대로 담기지 못하고 가장자리에서 맴돌고 있음을 인지했다. 472 밀리초. 0.5초도 안 되는 그 찰나의 지연이, 그녀의 존재와 현실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심연을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아니, 비명을 지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성대를 울리는 근육의 반응이 늦어 의미 없는 신음만이 새어 나왔다.
"으... 아..."
그 소리는 그녀의 귀에, 그녀의 의지보다 한참 늦게 도착했다.
기지의 의료팀장, 닥터 첸이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았다.
"박사님! 괜찮습니다. 여긴 화성 기지 '오디세이'입니다. 제 말 들리십니까?"
클라라는 첸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입술이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마치 외국영화의 더빙이 밀린 것처럼, "제 말 들리십니까?"라는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도달했다. 시각과 청각이 완벽하게 분리된 세상.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려 했지만, 그녀의 목 근육은 이미 0.5초 전의 과거에 묶여 있었다.
첸이 물이 담긴 컵을 건넸다.
"진정하세요. 천천히."
클라라는 손을 뻗었다. 그녀의 의지는 '컵을 잡는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녀는 자신의 손이 컵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손이 차가운 컵 표면에 닿았다는 '촉각' 정보는, 시각 정보보다 0.5초 늦게 뇌에 도착했다. 그녀의 뇌는 이미 컵을 잡았다고 판단했지만, 촉각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그녀의 손아귀 힘은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쨍그랑-
유리컵이 그녀의 손을 스쳐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쏟아지는 물방울들은 그녀의 눈에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지만, 유리가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는 그보다 한참 뒤에야 들려왔다.
"죄... 송... 니.. 하... ㅂ... 다..."
그녀는 사과하려 했다. 하지만 '죄송'이라는 단어와 '합니다'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뇌의 영역이 서로 다른 속도로 작동했다. 그녀의 말은 끔찍하게 분절되어, 기계의 고장 난 음성처럼 흘러나왔다. '영겁의 지연'은 끝났지만, 그 후유증인 '시간 해리 장애(Temporal Disassociation Disorder)'가 그녀를 영원한 시간의 감옥에 가두고 있었다.
며칠 후, 그녀는 탐사복을 입고 붉은 대지 위에 섰다. 이곳은 지독히도 고요했다. 지구와 달리 대기가 희박하고 먼지가 많은 화성의 지표면은 소리를 흡수해 버렸다. 메아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가 탐사 로버에서 내려 발을 내딛는 소리, "쿵" 하는 소리는 울려 퍼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즉시 흩어졌다.
이 메아리 없는 행성의 절대적인 고요함은, 그녀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각의 불화를 더욱 증폭시켰다. 그녀의 생각과 행동 사이의 그 미세한 틈이, 이 행성의 침묵 속에서 더욱 거대하게 느껴졌다.
유적은 그녀의 예상보다 훨씬 거대했다. 거대한 나선형의 미로. 그리고 그 중심에 솟아오른 검은 기둥. 클라라는 미로의 벽면에 새겨진 기하학적인 문양들을 손으로 쓸어보았다. 언어나 그림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곧 그 패턴의 의미를 깨달았다. 하나의 단순한 나선형 패턴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벽면 전체에 똑같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 하나의 생각을 완성하려다 실패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또 실패하고, 다시 시작한 흔적 같았다. 이 외계 문명이 시간의 지연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잃어버리고, 영원히 같은 패턴만을 반복해서 긁어내린, 광기의 물리적 증거였다.
클라라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통해 그들의 고통에 직결되었다. 그녀는 중앙의 검은 기둥 앞에 섰다. 그녀가 느낀 것이 맞다면, 그것은 단순한 돌이 아니었다. 수조 개의 크리스탈 격자로 이루어진, 거대한 데이터 저장 장치였다.
"아나톨리... 여긴 묘비였어요.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실수를 했어요."
그녀는 11분의 시간차를 넘어 지구로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각나 있었지만, 절박함만은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그녀가 탐사 장비를 기둥에 연결하자, 기둥이 반응했다. 그것은 인류의 0과 1 같은 디지털 데이터가 아닌 '뇌파' 그 자체, 한 문명의 집단적 기억이자 의식의 기록이었다.
기록을 읽기 위해선, 그녀 자신의 뇌파를 동기화해야 했다. 그녀는 정상적인 뇌파 패턴을 전송했다. 기둥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녀는 몇 번이고 다시 시도했지만, 기둥은 그녀를 이물질로 인식할 뿐이었다.
바로 그때, 그녀의 '시간 해리 장애'가 다시 그녀를 덮쳤다. 눈앞의 기둥과 그것을 만지는 손의 감각이 분리되며 극심한 현기증이 일었다. 순간적으로 손을 헛짚고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뇌파가 순간적으로 혼돈에 빠졌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위이이잉-
기둥이 그녀의 혼란스러운 뇌파에 '공명'했다. 그녀의 트라우마, 그녀의 조각난 의식이, 이 외계 문명의 고통과 동일한 주파수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녀의 고통이 이 거대한 기록보관소를 여는 열쇠였다.
기록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녀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들의 집단적 기억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환희, 그들의 첫 번째 전송, 그리고 수십 광년 떨어진 행성으로 의식을 보냈을 때 시작된 끔찍한 비극. 그들에게 '지연'은 수십 분이 아니라, 수십 년, 수백 년이었다. 생각이 떠오르고 그 생각이 완성되기까지 한 세대가 지났다. 그들의 문명 전체가 집단적 광기에 빠져 서서히 붕괴되는 과정을, 클라라는 1인칭 시점으로 목격했다.
이 유적은 그들의 무덤이자, 그들의 고통을 담은 마지막 경고였다.
그리고 그녀는 기록의 가장 깊은 곳, 그 모든 혼돈의 데이터 더미 밑바닥에서 유일하게 질서정연하게 빛나는 데이터 블록을 발견했다. 그것은 '흐름'이 아니라 완벽한 '상태'였다. 의식 전체를 하나의 완결된 정보로 스냅샷을 찍어, 시간의 저항 없이 전송하는 궁극의 해답. '양자 뇌사본(Quantum Engram Transfer, QET)'. 그들이 멸망 직전, 마지막으로 찾아낸 구원이었다.
"찾았어... 아나톨리, 우리가 틀렸어요. 이게... 이게 답이에요!"
그녀는 환희에 차 소리쳤다. 이 위대한 발견을 당장 지구로 보내야 했다. 그녀는 탐사 장비의 인터페이스를 조작하여, 이 데이터 블록을 전송 시스템으로 옮기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그녀의 눈앞에 깜빡이는 전송 대기 아이콘이, 그녀를 '영겁의 지연'으로 되돌려 보냈다. 깜빡이는 커서는, 그녀를 고문하고 갈기갈기 찢어놓았던 '차임벨'의 리듬과 정확히 일치했다.
"안돼... 안돼..."
그녀의 의식은 현재의 화성이 아닌, 과거의 전송 게이트 의자 위로 끌려 들어갔다. 왜곡된 에블린의 얼굴이 그녀를 비웃는 듯했다. 그녀는 현재의 자신과 과거의 트라우마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그녀의 손은 '전송' 버튼을 누르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트라우마는 '중단' 버튼을 누르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두 개의 상반된 명령이 그녀의 조각난 뇌에서 충돌했다. 그녀의 손은 의지를 잃고 경련하며, '전송' 버튼도 '중단' 버튼도 아닌, 바로 그 옆의 '물리적 인터페이스 긴급 차단' 패널을 온 힘을 다해 내리쳤다.
콰지직!
패널이 부서지며 스파크가 튀었다. 화성 기지 전체에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검은 기둥이 과부하에 걸린 듯 격렬하게 붉은빛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클라라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었을지도 모르는 외계의 유산을, 그녀 자신의 손으로, 그녀 자신의 트라우마로 인해 파괴하고 만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