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찜

by 강이랑


“누나, 아버지가 계란찜을 두 번 했는데 처음 거는 다 탔고 두 번째 거는 너무 달았어.”

얼마 전에 동생이 기차가 다니는 인근 도시로 아버지랑 함께 요리책을 사러 간다고 해서 무슨 요리를 해서 먹었나 궁금해 물어보았더니 계란찜을 해서 먹었다며 말한다.


“뚝배기에다 해 먹었으면 좋았을걸 노란 냄비에다 해서 시커멓게 탄 걸 닦아내느라 팔 아파서 죽는 줄 알았당게.”

“니가 고생이 많다잉.”

“아버지가 알랑가 몰라.”

“그래도 아시겠지!”

“아니, 모르는 것 같어. 오늘도 장애인 복지관에서 내가 무슨 말 좀 했다고 너무 말이 많다고 야단야단이당게. 아버지 있을 때는 전화도 못 하겠당게.”

"그래서 니가 전화를 안 했구나. 그렇게 힘들다면서, 근디 또 시골집에 가있냐?"

“내가 아니면 누가 와있겄는가.”


아버지는 설마 자신이 이토록 막내아들을 의지하게 될 것이란 걸 예상이라도 했을까? 우월의식이 팽배한 아버지는 지적 장애우인 막내아들을 살갑게 대한 적이 드물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단 하루도 혼자 밤을 새우기 힘들어했던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다섯 살이 어린 어르신을 고향집에 모셔왔었다.


팔순이 훌쩍 넘겨서도 아버지는 마치 공무원처럼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야 들어오고, 어르신만 홀로 남겨진 고향집으로 큰언니와 올케 언니가 정기적으로 찾아뵙곤 했다. 어느 날 올케 언니가 가보니 어르신이 쓰러져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자신을 위해서 어르신을 모셔와 놓곤 예전 엄마에게 그런 것처럼 어르신을 고독 속에 방치한 것이다. 올케 언니가 바로 발견해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어르신은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가 요양병원으로 가셨다. 어르신 또한 아버지를 따라왔을 때는 그 나름의 아픔과 고충이 있었기에 함께 했을 터인데, 어르신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어르신이 병원에 입원하신 후 바로 남동생이 아버지 곁을 함께 했다.


남동생은 아버지의 수족이 되어 눈약을 넣어주고 발톱을 깎아주고, 아버지가 된장국을 끓이고 계란찜을 하면 자신은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했다. 변덕과 잔소리가 죽 끓듯 하는 아버지를 남동생이 가장 잘 받아주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쉽사리 할 수 일이 아니다. 누가 나더러 사흘이나 일주일이라면 모를까 한 달 두 달, 1년 2년을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아버지는 남동생을 의지하다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동생에게 읍내 자기 집으로 가라고 한단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사시나무 떨 듯 벌벌 떨며 한시라도 홀로 설 수 없었던 아버지는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심신의 안정을 되찾은 느낌이 든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혼자 잘 지내셨는데, 새 해 들어 일주일 넘께 남동생이 다시 아버지 곁을 지키고 있었다. 아버지가 심신이 불안해졌을 때 바로 달려가주는 동생이 있어서 다행이다.


“누나 근디 가끔씩 날 잡아먹을라고 그런당게. 잘해줘도 뭐라고 해. 좋은 말로 그래야 허는디, 그런데 성격이 그래서 그래. 어떻게 하겠는가 사는 동안 잘 해드려야지.”


날이 저물어간다. 하루하루의 무사를 기원하며 나는 오늘도 남동생과 통화를 한다. 남동생의 이야기를 듣는다.


계란찜은 엄마가 살아생전 뚝딱뚝딱 즐겨 만들어주셨던 음식이다. 엄마가 해주시면 먹을 줄만 알았던 아버지가 스스로 요리책을 보며 아들과의 식탁에 내놓기까지 되었다. 엄마 돌아가신 직후의 아버지와는 딴판의 모습이기는 하다. 아버지와 남동생은 영양있는 음식으로 몸을 돌보며 나아가고 있었다. 쩌면 엄마의 죽음에서 가장 빠져나오지 못한 것은 나일수도 있다. 버지와 남동생의 모습을 보며 드디어 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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