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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랑 Feb 05. 2024

일어일문학과와 도서관학과


정말 신기하다. 고3 때 입시를 보고 원서를 넣은 대학에 1차 지망을 일어일문학로 적고, 2차 지망을 도서관학과로 적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잊고 있었다.


일본어는 국어 다음으로 고등학교 때 가장 시간을 들였던 과목이었다. 


하지만 당시 1 지망을 무얼로 할 것인가를 직전까지도 고심했다. 결국 1 지망을 일어일문과로 쓰고 2 지망을 도서관학과로 썼다. 그런데 1 지망이 떨어졌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 대학에서 연락이 왔다. 2 지망으로 쓴 도서관학과로 합격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도 고민했던 도서관학과로 합격을 했는데, 기쁘지가 않았다. 아마도 일어일문학과가 떨어졌을 때 마침 서울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던 작은 언니가 있는 곳으로 가 문예창작과를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난 이미 도서관과 인연이 있었던 거였다. 그런데 이때의 기억을 한동안 잊고 있었다. 사회로 편입하는 진로가 정해지는 중요한 순간에 내 안에 도서관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언제부터 도서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어디서 계기가 된 것일까. 그냥 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도서관을 생각했던 것일까.


그대로 도서관학과로 진학했더라면 지금쯤 어느 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의 소에다 씨처럼 어느 지방 소도시 도서관에서 없어서는 안 될 도서관원이 되어 생활하고 을까. 도서관 행정 처리, 도서 관리, 관내 이용객에 대한 외적 내적 캐어 등 상상만 해도 벅차다. 소에다 씨처럼은 못한다. 소에다 씨는 그림자처럼 조용히 움직여 작은 실수 하나 없이 명확하고, 깔끔하고, 완벽하고, 이것 말고도 또 나열할 수식어가 없나 고심할 정도로 도서관 관련 모든 일을 유능하게 처리한다. 나는 턱도 없는 소리다. 어쩌면 나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쏟다가 과부하가 걸리거나,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카락이 다 빠지거나, 실제로도 겪은 적이 있는 공황장애나 이가 아작이 나있을 것 같다. 본래 내 성향이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도서관학과에 합격을 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그때 그대로 입학 수속 절차를 밟았다면 지금 내 인생은 바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본다. 그렇지만 승진은 못했을 것 같다.


막상 문예창작과에 들어간 20대 초의 나는 교우 생활도 문제없고 학교 생활도 잘 이어갔지만 알 수 없는 반항심과 막막함, 답답함이 함께 했다. 진학한 대학 도서관보다는 바로 근처에 있는 남산도서관을 즐겨 찾았다. 그곳에서 책을 통해 넓은 세상을 만나고 다양한 인간군상을 대면했다.     


도서관학과는 못 갔지만 신기하게도 이렇게 도서관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조금 패턴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나라고 하는 사람의 특질은 크게 변하지는 않는가 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도서관은 내 인생에서 은혜로운 곳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나보고 나니 도서관이 한 명의 삶에 이렇게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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