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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랑 Feb 06. 2024

일본의 작은 도서관 ‘문고’


일본 유학시절에 두 군데 작은 도서관에서 활동했다. 한 군데는 동사무소 내의 공간을 빌려 운영한 작은 마을 도서관이었고, 한 군데는 유치원 원아들을 대상으로 한 작은 그림책 도서관이었다. 일본에서는 이런 작은 도서관을 ‘문고(文庫)’라 불렀다.


나중에 우리나라에 와서 보니, 일본에서의  ‘문고’가 우리나라의 작은 도서관과 유사하다는 걸 알았다. 일본에서 문고는 자신의 집 서재를 개방해 동네 아이들과 책을 공유하는 개인문고, 마을 사람들이 서로 협력해 운영하는 지역 문고가 있었다.


내가 경험한 두 군데 중 하나인 작은 마을 도서관은 한 아파트 단지 내 학부모가 중심이 되어 운영한 지역 도서관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 수업 중에 영국에서 그림책으로 학위를 받고 오신 선생님의 그림책 수업이 있었다. 그 선생님이 다니던 도서관이어서 나도 그 인연으로 정기적으로 마을 도서관을 찾아가 운영진 어머니들하고도 친구가 되고 자녀분들하고도 가깝게 지냈다. 마을 도서관에서는 영유아 프로그램부터 종이접기, 스토리텔링, 종이 연극, 인형극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었는데, 종종 그 지역에 사시는 종이비행기 달인, 과학에 박식한 분들의 특별행사도 열렸다. 무엇보다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솔선수범하여 내 자녀만이 아닌 자녀의 친구도 함께 돌보았다. 


마을 문고는 동화책과 그림책이 완비된 것 빼고는 소박했다. 정말 보태는 것 하나 없이 오로지 책만 있었다. 마을 도서관이 문을 여는 날이면 많은 아이들로 북적댔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다채롭고 다양한 특성이 어우러지며 순식간에 활기찬 공간으로 탈바꿈하곤 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 가는 걸 거부한 아이들도 마을 문고에는 나와서 행사도 즐기고 책도 빌려갔다. 정말 이 아이들과 함께 많이 웃고 놀았다. 댁으로 초대해 주어서 여러 일본 가정집을 방문할 기회도 얻었다. 내가 책이 있는 도서관이 아니면 어디서 이렇게 아파트 단지 내 학부모님과 그 자녀분하고도 스스럼없이 지내며 같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단 말인가. 


오랫동안 유치원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활동을 한 작은 그림책 도서관은 우리 대학교 아동문학과 선배들과 교수님께서 만든 도서관이라 나와 같은 아동문학과 학생들이 참여했다. 선후배 학생들의 커뮤니티 장소이기도 했고, 미취학 어린 아이들과 교류할 수 있는 살아있는 실습 현장이었다. 작은 그림책 도서관에서는 손으로 직접 써서 대출 서비스를 했다. 그림책 맨 뒤에 꽂혀있는 대출카드에 아이들 이름을 일일이 적었다. 아이들 중에는 대출 카드를 빼서 친구들 중 누가 빌려갔는지 하나하나 이름을 확인하는 아이도 있었다. 여기서도 느리지만 아이들과 호흡하는 정서가 살아있었다.


우리나라 곳곳에 운영 중인 작은 도서관이 많았지만, 나는 책과 도서관이 중심이 되어 아이와 부모와 마을 공동체가 서로 어울리는 장소와 오랫동안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세상사 알 수 없다. 요 1,2년 사이에 화서에 있는 작은 그림책 책방, 용인에 있는 작은 도서관, 분당에 있는 작은 도서관 등 학부모가 솔선수범하고 아이들의 영혼이 활개 치는 장소를 만나게 되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도서관과 책방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살아 움직인다는 점과 크지 않고 작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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