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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랑 Feb 07. 2024

대학 도서관과 미야자와 겐지


‘국민 여동생’, ‘국민 사위’란 말이 있듯이 우리나라 어린이문학에서의 ‘국민 작가’하면 권정생 선생님이 떠오른다. 일본의 어린이문학에서의 국민 작가는 아무래도 미야자와 겐지가 아닐까. 권정생 선생님께서도 미야자와 겐지를 좋아해 <비에도 지지 않고>를 번역하셨다.


미야자와 겐지는 일본을 대표하는 동화 작가로 1920년대에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했지만 주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1920년 전후 일본에서 어린이문학이 꽃을 피웠을 때 미야자와 겐지는 당시의 문단 작가나 중요 투고 매체인 어린이 잡지와는 전여 관여하지 않고 일본의 동북지방인 이와테현 하나마키를 거점으로 누가 알아주든말든 자신만의 고유한 작품을 썼다. 미야자와 겐지는 철저한 비주류였다. 생전에 자신의 사비를 들여 단편동화집과 시집을 자비로 출판했다. 작고 후에야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재평가가 이루어져 현재는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 작가가 되었다.


미야자와 겐지의 대부분의 작품을 다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첼로 켜는 고슈>, <주문이 많은 음식점>, <도토리와 산고양이>, <오츠벨과 코끼리>, <눈길 건너기>, <늑대 숲, 소쿠리 숲, 도둑 숲>,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 <은하철도의 밤>을 좋아한다. <은하철도의 밤>은 마츠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 999>에 영감을 준 작품이기도 하다. 미야자와 겐지의 어떤 작품은 수십 번도 넘게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새롭다.


내가 미야자와 겐지를 처음 만난 건 일본으로 유학 가기 전으로 안국동에 있는 일본문화원 도서관 서가에서였다. 서가에는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가 다수 비치되어 있었다. 나는 한 권 한 권 빌려 읽고 유학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기도 해서 한 문장 한 문장 꼼꼼히 필사했다.


대학교 아동문학과에 들어가 보니 미야자와 겐지를 언급하지 않는 선생님이 없을 정도였다. 미야자와 겐지 관련 과목도 많았다. 아동문학개론이건 작품론이건 작가론이건 겐지 작품은 반드시 나왔다. 미야자와 겐지가 일본 사람들한테 존경받는 국민 작가란 걸 알고 미리 읽고 간 건 아니었다. 우연히 읽어본 <주문이 많은 음식점>의 난센스와 이야기 전개에 반해 가능한 전집을 다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에 그랬던 것 같은데 미리 읽어가길 잘했다란 생각을 했다.


대학시절 시간만 나면 대학교 도서관을 아지트로 삼아 세계 각국의 어린이문학 작품을 읽곤 했는데 대학 도서관에서 놀란 건 겐지 관련 연구서와 비평서가 실로 방대하다는 거였다. 겐지 작품에 등장하는 어휘들을 모아두고 해석한 사전까지 있었다. 겐지 동화로 리포트를 써야 할 과목도 많았기 때문에 대학 도서관에서 겐지 연구서나 비평서를 닥치는 대로 읽었다. 결코 쉽지 않았다. 겐지의 작품 중에는 난해하고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 작품도 많았기 때문에 연구서나 비평글 또한 난해했다. 수시로 사전을 들춰가며 읽었다. 덕분에 한없이 취약했던 전문 용어나 학문 용어가 조금은 늘었다.  


겐지 작품이 워낙 심오해 연구서나 비평서의 해석이나 논리 전개를 읽는 재미가 정말 쏠쏠했다. 어쩌면 이때의 독서 체험이 내가 연구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무엇보다도 도움이 되었던 것은 한 작품에 대한 다양한 연구자들의 다양한 해석이었다. 당시 학문적인 열기로 충천했던 나는 도서관 안락한 탁자에 앉아 거리낌없이 누릴 수 있었다. 어린이문학 전문학과가 있고 도서관이 그에 응답해 체계적이고 방대한 양의 자료를 한 곳에 모아두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문단 권력이나 이해관계와는 거리가 먼 동북지방에서 동물과 숲과 자연과 하늘을 벗삼아 묵묵히 작품을 쓴 미야자와 겐지라서 가능했다.


*대문 이미지는 바이카여자대학(梅花女子大学)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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