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스타이그, 김경미 옮김, 마루벌, 2005
윌리엄 스타이그는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 《멋진 뼈다귀》,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 《슈렉!》등 많은 그림책을 출간한 작가이다. 이중 《슈렉!》은 영화화되었다.
티프키는 언제나처럼 쓰레기를 수거하다가 뭔가 특별한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예감에 점쟁이 오리 부인에게 점을 쳐본다. 점쟁이 오리 부인은 깜짝 놀랄 말을 한다.
당신은 오늘 해가 떨어지기 전에, 결혼할 아가씨를 만나서 사랑에 빠질 거예요. 무슨 일도 당신을 막을 수 없어요.
이보다 더 멋진 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수거한 쓰레기를 트럭에 싣고 쓰레기장으로 가는 길 내내 티프키의 머릿속은 오늘 해가 떨어지기 전에 만날 아가씨 생각으로 가득 차있다. 쓰레기장에 도착해 쓰레기를 비우던 티프키는 에메랄드 목걸이를 발견한다. 티프키가 주운 에메랄드 목걸리는 중요한 복선이 된다.
일을 마친 티프키는 소풍 가는 마을로 향한다. 이대로만 진행된다면 제목 그대로 아주 멋진 날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아주 멋진 날’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점쟁이 오리 부인이 아무리 “무슨 일도 당신을 막을 수 없어요.”라고 확신을 주어도 티프키가 과정 속에서 맞닥뜨리는 일은 엄청난 공포 체험이다.
그림책 판권 페이지에는 이 그림책에 대한 한 줄 내용 요약이 쓰여있다.
쓰레기 청소부 티프키 두프키가 우여곡절 끝에 연인을 만난다.(《티프키 두프키의 아주 멋진 날》)
한 줄 내용 요약 중 ‘우여곡절 끝에’에 주목한다. 요약 대로 그 끝에는 사랑하는 연인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지만 티프키가 겪는 ‘우여곡절’은 거의 호러에 가깝기 때문이다. 티프키를 고난에 빠뜨리는 장본인은 점쟁이 오리 부인을 시기하는 암탉 부인이다. 암탉 부인의 농간에 빠진 티프키는 암탉이 쏜 이상한 화살을 쫓아 홀린 듯 따라간다. 암탉의 화살은 티프키를 양산을 들고 들판에 서있는 날씬하고 우아한 아가씨에게로 안내한다. 하지만 양산을 쓴 아가씨는 얼굴 없는 지푸라기 허수아비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가오나시’가 떠오른다.
기대를 가지고 내가 마주한 대상이 사지는 멀쩡해 보이는데 실은 허깨비라고 생각해 보라. 소름 돋는다. 티프키의 공포 체험은 이제 시작이다. 물론 그 끝에는 진짜 연인이 기다리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티프키가 겪는 하루의 여정은 결코 녹록지가 않다.
얼굴 없는 허깨비 아가씨에 이어, 엉뚱한 곳으로 길을 안내해 위험에 빠뜨리는 만돌린을 연주하는 고양이 신사, 잠자리채를 들고 나비를 쫒다가 자신이 뒤집어쓰는 미치광이 등이 등장한다. 미치광이는 동물 모습이 아닌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오리 부인이 말한 대로 티프키는 해가 떨어지기 직전, 해가 서쪽 지평선으로 넘어가기 직전에야 연인을 만난다. 티프키와 에메랄드 목걸이의 주인인 에스트렐라가 마주 선 금빛 저녁노을은 정말이지 아름답다.
이 그림책을 독서 코칭을 하는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에게 읽은 적이 있다. 아이들은 티프키가 겪는 고난을 통해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얼마든지 얼굴 없는 허깨비에 휘둘리고, 길을 잘못 안내받아 위험에 빠질 수 있으며, 순진한 미치광이를 마주칠 수 있다는 걸 짐작하고 있다는 듯이 그림책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나는 내가 이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 얼굴 없이 다른 누군가의 허깨비가 되어 타인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길을 찾아 헤매는 누군가를 잘못 안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허상을 쫒다 순진한 미치광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본다.
이 그림책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하루의 끝자락에 이르러 길바닥 바위에 앉아 지쳐 쉬고 있는 티프키의 표정이 그토록 험한 일을 겪었는데도 온화하다는 점이다. 아직 위기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티프키는 마침내 에메랄드 목걸이의 주인인 진짜 연인과 만날 수 있었겠구나 싶다. 그렇다고는 해도 티프키처럼은 아무나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