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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랑 Feb 12. 2024

밑줄을 그을 수는 없지만


책을 읽을 때 밑줄 긋는 것을 좋아한다. 때론 한 줄로는 모자라 빡빡 두 줄을 그을 때도 있고, 낱말에 따라서는 동그라미를 치거나 네모를 친다. 빨간색, 파랑색, 검정색 줄을 긋고, 빈 공간에는 되새기고 싶은 문구나 의문점 등을 쓴다. 눈만이 아닌, 머리나 가슴만이 아닌, 손이 함께 읽어야 할 때가 있다. 모든 책을 다 그렇게 밑줄 긋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책의 경우 밑줄을 긋지 않고는 못 배길 때가 있다. 저절로 손이 움직일 때가 있다.


당연하지만 도서관 책은 밑줄을 그을 수가 없다. 손으로도 읽고 싶을 때가 있는데, 눈으로만 읽어야 한다. 가끔씩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밑줄이 그어진 책을 볼 때 그렇게 방해가 될 수 없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로는 기가 막히게 중요한 대목에 밑줄을 그어놓아 감탄하며 읽은 적도 있다.


본인 책이어도 밑줄 하나 없이 깨끗하게 아뀌고 아껴가며 읽는 친구도 많다. 내 책은 내가 긋는 밑줄로 어제 산 새책이 벌써 헌 책 같은 상황이 된다. 물론 내 책도 줄을 긋지 않는 책도 많다. 특히 그림이 함께 하는 그림책은 내 책일지라도 줄을 긋지 않는다. 사실 그림책은 줄을 그을 일도 적을 뿐더러, 줄을 긋지 않고 잘 보고 있다가 주변에 딱 이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을 때가 생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헌책방에서 그림책을 구입할 때 보면 아이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거나 손글씨가 쓰여있을 때도 있다. 어쩌면 나의 밑줄은 책 속에 참여하고 싶고 개입하고 싶은 어린이성의 발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도서관 책을 읽을 때는 평소 독서 노트와 볼펜을 상비해 메모를 하면서 읽는다. 또 어떨 때는 되새기고 싶은 대목에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반납하는 날 도서관에 가서 탁자에 자리 잡고 앉아 하나하나 포스트잇을 떼어가며 노트에 기록하곤 한다. 그런데 이 작업이 꽤 많은 도움을 준다. 읽을 때 뭔가 와닿은 게 있어서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는데 잠시 잊고 있다가 며칠이 지나 하나하나 기록하면서 작업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작품세계나 문장 하나하나가 더 이해가 되고, 깊은 사유를 하게 된다. 만약 포스트잇이 없었다면 어쩔 뻔했나? 누가 처음 포스트잇을 만들었을까?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일본 쪽 자료를 검색하다가 알게 되었는데 장기간 보전을 전제로 하고 있는 도서관 자료는 가능한 포스트잇을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를 요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포스트잇을 뗄 때 책 표면을 다치게 하거나 풀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포스트잇보다는 독서 노트에 바로바로 메모해 가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에 읽을 때는 책 그 자체를 즐기며 읽고, 메모 작업을 하면서 생각하는 머리와 깊은 내면이 더 함께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쩌면 내가 밑줄을 긋는 것도 역시 책 내용을 더 잘 이해하고, 깊게 참여하고 싶은 욕구였다는 생각이 든다. 내 책일지라도 독서 노트에 필사를 하고 탐구하는 더 적극적인 독후 활동이 병행된다면 좋을 텐데 또 그것까지는 못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메모로 이어지는 도서관 책이 더 적극적인 독후 활동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기한이 정해져 있고,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란 생각에 절박함이 더 생겨나는 것 같기도 하다.


메모 작업을 한번 해놓으면 어느 공책에 무슨 문구를 적어 두었는지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필요할 때마다 독서 노트를 펼쳐 보며 두고두고 되새기면서 읽는다. 비록 도서관 책은 색색의 볼펜으로 밑줄을 그을 수는 없지만 하나하나의 문구를 필기해 두었다가 생각날 때마다 독서노트를 펼쳐보며 언제고 되새김질할 수 있어서 좋다.


*사진의 책은 《민담 속의 여성성》(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 글, 박영선 옮김, 한국융연구원, 202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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