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물’하면 각자 어떤 장소, 어떤 준비물을 먼저 떠올릴까? 나의 경우는 소풍날이 떠오른다. 과자와 김밥과 음료수가 필수품이었다. 수학여행의 경우는 또 달라지겠지만 소풍의 경우는 용돈도 필요 없었다. 내가 학창 시절 갔던 소풍은 숲 속이나 산 속이었기 때문에 돈 쓸 일이 없었다. 미리 준비한 먹거리와 음료수만 있으면 모든 게 갖춰졌다.
도서관에 갈 때의 필수품은 도서관 이용증, 물병, 잘 나오는 볼펜, 그리고 독서 노트만 있으면 된다. 이용증을 잊어버리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지금까지 한두 번은 서두르다가 깜박한 경우가 있긴 하다. 챙긴 줄 알았는데 이용증을 집에 두고 왔을 때의 난감함이란! 이럴 경우에는 어쩔 수 없다. 도서관이 끝날 때까지 책을 읽고 온다.
물병을 빠뜨릴 수 없다. 물병은 정말로 유용하다. 공공 도서관 곳곳마다 정수기가 비치되어 있어서 빈 물통만 있으면 언제든지 물을 마실 수가 있다. 각 도서관마다 정수기 물맛도 달라서 비교해서 마시는 맛도 있다. 어느 도서관에는 바로 옆에 정수기가 나란히 두 대씩이나 있는 곳도 있어서 한 번은 왼쪽 정수기 물을 한 번은 오른쪽 정수기 물을 번갈아 마시는 맛도 있다.
특히 내가 즐겨 가는 도서관은 산 아래, 언덕 위 등 극기 훈련장 같은 데에 있어서 물병은 필수 중의 필수다.
가장 중요한 볼펜과 독서 노트. 나는 학창 시절 때보다 지금 더 볼펜에 민감하다. 집을 나설 때 오늘은 어떤 볼펜을 지참할 것인가 꼼꼼히 살펴 챙긴다. 하루의 고단함을 볼펜이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서점이나 문구점에 갔을 때 하나하나 써보고 시간을 들여 고른 볼펜보다 우연히 친구가 준 사은품 볼펜이나 행사 때 얻은 볼펜이 훨씬 유용할 때가 많다. 쓱쓱 잘 써지는 볼펜만 있다면 이날의 독후 활동은 그야말로 술술 진행된다. 모든 준비물이 다 갖춰졌는데 볼펜이 없을 때는 정말이지 ‘허걱’한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가장 필요한 순간 볼펜이 없을 때가 있다. 이럴 땐 그냥 울고 싶다.
그리고 공책. 한 때 나의 수첩과 공책은 꿈 기록으로 채워졌었다. 지금은 독서 노트의 역할을 수행한다. 도서 노트는 가장 심플하고 작고 가벼운 것을 고른다. 학창 시절 때보다 더 열성적으로 필기하고, 시험과 상관이 없는데도 독서 노트를 찾아 읽는다. 어쩌면 지금이 진짜 공부다운 공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준비물이 갖춰지면 도서관으로 향한다. 그러면 빈 물통은 채워지고, 빈 공책도 채워지고, 볼펜은 춤을 추듯 공책 위를 내달린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걸 담고 책을 담아오는 배낭. 하마터면 배낭을 빠뜨릴 뻔했다. 준비물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갑자기 고전소설 <규방칠우쟁론기>를 바탕으로 쓰고 그린 이영경의 그림책 《아씨방 일곱 동무》에서의 바느질 관련 도구 동무들 자, 바늘, 실, 다리미, 골무, 인두, 가위 등 일곱 동무의 논쟁이 생각난다. 도서관을 갈 때 반드시 필요한 준비물인 회원증, 물통, 볼펜, 공책, 배낭 등 다섯 동무가 “내가 없으면, 이랑 님은 도서관에 와봤자 아무것도 못 해.”, “웃기고 있네, 다 내 덕분이지.”, “됐고, 나 없으면 공부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어.”, “하이고, 잘난 척들 작작 좀 하시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들 하고 자빠졌네.”라며 쟁쟁쟁 쟁론을 벌이는 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어이쿠, 나의 도서관 동무들을 너무 격한 말로 쟁론 붙였다. 다섯 동무는 쟁론할 의사도 하나 없는데 나 혼자. 그것도 도서관을 가는 준비물 친구들한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