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시기에 전철을 타고 가던 도서관을 쉽사리 갈 수 없게 되었다. 도서관이 폐관하는 날도 잦아졌다. 전철을 타고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 동네 가까이에도 공공 도서관이 있지 않을까. 그때서야 머리가 돌아갔다. 멀리 있는 도서관까지만 갔지 가까이에 있는 도서관을 몰랐다. 찾아볼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드디어 검색에 들어갔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 30분 걸리는 곳에 큰 공공 도서관이 있었다. 심지어 남산도서관이나 용산도서관에도 없는 책이 우리 동네 공공 도서관에 있었다. 무엇보다 걸어서 갈 수 있었다. 나는 걷는 거라면 어디까지나 몇 시간이나 끄떡없다. 이제는 10년도 다 되어가는데, 옥수에서 살던 시절에 공황장애가 심하게 와 종로 5가에서 옥수까지도 걸어 다녔다.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도 나오고 드라마로도 나오고 주제가도 유명한 <걸어서 하늘까지>란 제목의 드라마가 생각났다. 그때는 방향성이 오로지 ‘걸어서 집에까지’가 목표였다.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걸어서 집에 도착했었다. 집에 도착해선 엄청난 안도감에 캔맥주 하나 마시고 잠이 들곤 했다. 이제 내가 걷는 방향성은 ‘걸어서 도서관까지’다. 도서관이 있는 곳이라면 걸어서 그 어디든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도서관을 향한 날은 유독 잘 걷는다.
전철을 타고 용산도서관과 남산도서관을 갔을 때 배낭이 가벼울 경우에는 명동으로 내려가 종로를 가로질러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간 적도 있다. 찾는 자료가 있으면 그 길로 경복궁 옆길을 지나 정독도서관까지 갈 때도 있다. 도서관을 지표로 걷다 보면 길거리 위에서도 여러 삶의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런데도 처음에 우리 동네 공공 도서관을 개척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 하거나 처음 가보거나 매번 모든 ‘처음’은 시간이 걸린다. 처음이 더디지 한번 하고 나면 꾸준하기는 하다. 그런데도 걸어서 갈 수 있는 우리 동네 도서관을 좀 더 빨리 가볼 생각을 못하고 있었던 것은 또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이제는 언제든 가볍게 우리 동네 공공 도서관까지 걸어 다닌다. 왕복 한 시간이지만 아마도 나는 더 멀리 두 시간이건 세 시간도 걸어 다닐 수 있다.
그렇게 몇 년을 잘 다니며 좋은 시장까지 덤으로 알아 도서관을 다닐 때마다 들려 야채를 사곤 한 우리 동네 공공 도서관이 올 새해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어린이자료실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공사이다. 내 삶의 지표가 되어 걸어서 도서관까지를 잘 실천하던 우리 동네 공공 도서관이 공사에 들어가자 또 신기하게도 바로 우리 옆 동네 다른 도서관 두 군데를 새로 알게 되었다.
‘걸어서 도서관까지’란 방향성 덕분에 우리 동네 주변 저 멀리까지 행동반경이 넓어졌다. 인생이란 알 수 없어서 언젠가는 ‘걸어서 ○○까지’란 또 다른 목표 지점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지금 내 걷기의 중심에는 도서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