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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랑 Feb 02. 2024

더 도서관 같은 작은 그림책 책방


화서역에 있는 작은 그림책 책방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책방지기 선생님이 지난주 화서역에 생긴 쇼핑몰에 오픈한 도서관을 들렀다 가자고 해서 그러기로 했다. 흰구름이 봉긋봉긋 피어오른 이른 아침이었다.


오픈 전에 만나자는 약속을 해서 여유롭게 집을 나섰다. 막상 쇼핑몰에 도착해 보니 아직 오픈 전인데도 줄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청소년부터 어린 초등학생 남자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진짜 줄이 길기도 길었다. 줄 끝을 찾아가도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 부지런히 움직여 줄 끝을 찾아 섰다. 한겨울 이른 아침부터 아이들이 왜 이리도 부지런하단 말인가? 나중에 알고 보니 유명한 게임 굿즈를 사기 위한 줄이었다. 한 사람 당 두 개밖에 살 수 없다고 한다. 놀랍다. 내가 모르는 세상의 또 다른 움직임을 보았다.


도서관을 보러 온 우리는 길고 긴 줄에서 이탈해 다시 정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시 왔던 길고 긴 줄을 되돌아가며 다시 한번 학생들의 열기와 부지런함에 놀랐다.


도서관은 멋졌다. 정말 정말 멋졌다. 화사한 네모 칸 하나하나 마다 멋진 책이 세워져 있었다. 아주아주 높은 탑같았고, 가본 적은 없지만 사진으로만 본 중국 낙양의 용문석굴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석굴 대신에 책이 들어있는 게 다르다고나 할까. 외향이 다 했다, 란 느낌이 들었다. 빛이 났다. 소장도서 검색 시스템이 안되었고 청구기호가 없었다. 나도 사진을 찍고, 책방지기 선생님도 사진을 찍고, 도서관을 찾아온 사람들 모두 다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영혼이 붕붕 떠돌아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을 가다듬을 틈이 없었다. 이래도 안 찍을래? 이래도 와아 안 할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사진을 찍었고, 와아 했다.


좋았지만 쇼핑몰 안 화려한 도서관을 벗어나 어서 빨리 책방지기 선생님네 작은 그림책 책방으로 이동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틈날 때 와서 자유롭게 책을 읽고 가는 책방지기 선생님네 작은 그림책 책방이 더 도서관 같았다.  아이들은 책방에 들어와 외투를 벗어 정리해 놓고 각자 좋아하는 책 세계로 빠져들었다. 나는 드디어 이곳에서 평소 때 내 영혼을 찾을 수가 있었다. 조금 시간이 한가해졌을 때 책을 읽고 있던 소년이 “꿈이 뭐예요?”하고 갑자기 내게 물었다.


“나? 작가가 꿈이었어. 넌?”

“전 유튜버요.”

“어떤 콘텐츠를 할 건데?”

“게임요. 그리고 무서운 얘기도요.”

“게임, 요즘 핫하지. 무서운 얘기도 좋고.”


그때부터 우리는 무서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같이 있던 여자아이도 합세해, 동서양의 다양한 요괴와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무슨 얘기를 할 때마다 여자아이가 책방 어딘가에 꽂혀있는 책을 기가 막히게 꺼내와 “여기에 있어요.”하며 방금 전에 말한 요괴를 찾아서 보여주었다. 이 아이들이 사서고 그 분야의 전문가였다.


또 다른 아이들과는 끝말잇기도 했다. 내가 막히면 옆에 있던 책방지기 선생님 따님이 힌트를 주기도 하고, 내가 무심코 내뱉는 외래어 느낌의 이름을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왔다고 알려주기도 했다. 지금 독서모임에서 호메로스의 《일리스》를 읽고 있는데,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 수준으로 헤매고 있어서 아이들이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온 신들이나 인물들을 꿰고 있는 게 그저 경이롭기만 했다.


그러다가도 아이들은 순식간에 책의 세계로 집중했다. 이곳이 마치 더 서로의 영혼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활개 치는 도서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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