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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랑 Jan 31. 2024

전미화의 그림책 《다음 달에는》

전미화, 사계절, 2022


전미화 작가의 그림책은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작가의 그림책을 우리 동네 공공도서관 어린이열람실에서 쌓아두고 본 날이었다. 전미화 작가 그림책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달 밝은 밤》, 《다음 달에는》,  《미영이》,  《달려라 오토바이》,  《어느 우울한 날 마이클이 찾아왔다》 등을 좋아하는데, 이날은 특히 《달려라 오토바이》에 꽂힌 날이었다.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척척 다 해내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세 아이 합해 다섯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달려라 오토바이》.  오토바이는 가족들을 일터로, 바닷가로 그 어디든지 데려다주는 보물 같은 존재이다. 그림책을 보는 내내 최선을 다 해 씩씩하게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이 내 뇌리에 각인되었는지 도서관을 나와 동네 거리를 걷는데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오토바이란 오토바이가 그냥 오토바이로 보이지 않는다.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오토바이가 불현듯 물 흐르듯이 내 내면세계로 흘러 들어왔다. 전미화 작가의 그림책에는 내면세계를 건드리는 힘이 있다.


그림책 《다음 달에는》 결코 밝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도 표지를 보면 남자아이가 엎드려 밝은 표정으로 책을 보고 있다. 아빠와 단 둘만 사는 소년은 한밤중에 짐을 싸 집을 나온다. 아빠가 사업에 실패한 것일까. 두 사람은 공사장 앞에 세워둔 학원 봉고차에서 숙식한다. 소년의 꿈은 다음 달에는 무사히 학교를 갈 수 있는 것이다.


아빠가 공사장으로 일을 하러 나간 사이에 소년은 전날 사둔 삼각김밥과 우유를 먹고, 혼자 있는 날에는 도서관에 가 책을 읽는다. 소년이 읽고 있는 책 제목이 《배부른 날》이다.《배부른 날》은 그림책인 것일까. 표지를 보면 배부른 생쥐가 포만감에 차 풀밭에 누워있다. 소년이 현실에서 처한 상황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지만, 소년은 집중해 책을 본다. 도서관에서 소년이 맞닥뜨리는 최고의 난관은 학교 친구를 만나는 것이다. 소년은 지금 학교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빚독촉에 시달리는 아빠는 엉엉 울면서 아들에게 다음 달에는 꼭 학교에 갈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소년은 학교 가는 걸 좋아하고, 책을 좋아한다. 아빠가 일을 나간 사이 소년은 봉고차 바닥에 엎드려 밝은 얼굴로 책을 읽는다.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온 것일까?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도서관, 지금 당장은 소년에겐 영혼의 쉼터이고 배움의 장소이다. 어쩌면 이제 공공도서관 어린이열람실에서 책을 읽다가 혼자 책을 읽고 있는 아이를 보면 아마도 《다음 달에는》의 소년의 모습이 오버랩될지도 모른다.  


작은 도서관에서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들과 이 그림책을 읽은 적이 있다. 학생들은 숨소리를 죽이고 몰입했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말했다.


아이는 자기 아버지가 생계 수단을 벌면서 힘들어하는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 그러면서 아이는 인생의 고난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아도 몸으로 깨닫는다. (《개인 심리학에 관한 아들러의 생각》, p.229)


《다음 달에는》의 소년 또한 분명히 알고 있다. 독서코칭에서 만난 소년들도 그랬다. 부모가 어떠한 상황일지라도 아이들은 부모의 마음을 본다. 아이들이 부모의 마음을 보는 만큼 어른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읽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아빠는 공사장 일을 하면서도 아들의 식사를 챙기며 특히 우유를 마시도록 권한다. 성장기 아들을 위해 자신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는 것이다. 도서관을 맨 처음 안내한 사람도 아빠다. 이 아빠 비록 사업을 실패해 인생의 암초에 직면한 상황이긴 하지만 아들을 보고 있다. 이 어려운 시기 소년에게는 지금 당장은 우유와 도서관과 봉고차와 아빠가 있으면 된다.  어려움에 처한 항해 길에서 소년 가까이에 도서관이 있어서 천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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