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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랑 Jul 04. 2024

지적


'지적'하면 뭔가 좋지 않은 이미지가 있다. "지적질"하면 더 안 좋은 이미지가 있다. 사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지적받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


장마주간, 그제는 아주 비가 많이 내렸다. 어제는 가 오지 않았지만 우산을 챙긴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원문 에세이를 읽으며 하는 일본어 수업있어서 오후 3시 반경에 전철을 탔다.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는 문에서 가까운 좌석 앞쪽 빈 공간에 서있다. 어떤 여성이 내리려는지 통로를 지났다. 그리고 무언가가 내 허벅지를 쳤다. 돌아보니 여성이 든 비닐 장우산이었다.  여성은 비닐우산을 아래쪽으로가 아닌 팔에 걸쳐 들고 있었다. 가방 함께 든 우산이 옆으로 삐죽이 나와  허벅지를 친 것이다.


내가 들고 있 물건이 누군가를 치거나 어딘가에 닿으면 알게 마련이다. 우산 상태를 확인한 나는  어이가 없어서 여성의 얼굴을 몇 초간 쳐다보았다. 여성은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인데도 전혀 나몰라 하는 얼굴이었다. 여성의 외향은 정말이지 그냥 평범한 내 주변에서 익히 보는 그런 중년 여성에 속했다. 하지만 여성은 자신의 물건이 누군가를 쳐도, 누군가 수정을 요하는 몸짓을 날려도 꿈적도 안 했다. 멀쩡하게 두 눈을 뜨고 있었지만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마주하고 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여성이 서있는 문가로 어린아이가 다가왔다. 우산이 아이의 목께에 닿았지만 여성은 자신의 우산을 고쳐들 생각을 안 했다. 나는 아이의 보호자에게 우산 조심하라고 알다.


그 여성에게 말을 할  그랬다. 그 여성에게 그 자리에서 지적을 할  그랬다. 자신의 우산을 흙바닥에 놓건 말건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내가 뭐라고 할 일이 아니다. 내 우산이 아닌 상대의 우산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우산이나 잘 챙길 일이다. 하지만 자신 편하라고 든 우산이 누군가를 툭 치고 누군가를 위협하는 상황이라면 말이 다르다.


몇 주 전에 멀리 일 보러 갔다가 ktx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이었다. 9시를 훌쩍 넘긴 토요일 늦은 밤이었다. 지인한테서 전화가 와서  나는 지금 열차를 타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조심하며 좌석에서 전화 통화를 했다. 내 바로 옆좌석은 비어있었지만 앞, 뒤, 통로 너머 옆좌석은 차 있었다. 뭔가 지인과 나 사이에 서로 기억하는 것에 오류가 발생하며 우리는 양쪽 모두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그러자 뒤에 앉아있던 여성이 내 어깨를 톡 치며 전화 통화 계속하려면 뒤쪽 통로에 가서 하라고 다. 부끄러웠다. 나는 바로 사과를 하고 얼른 전화를 끊었다. 지적받을만했다. 뒷분이여, 잘 지적해 주셨다! 덕분에 지인과의 내가 맞네, 이렇게 말했네, 렇게 들었네 공방을 끊을 수 있었다.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수정하고 나 자신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다. 내가 공공의 피해를 주는 상황을 연출했다면 지적받아 마땅하고, 나 또한 피해를 보거나 대중에게 위험을 끼치는 상황을 목격했다면 그 자리에서 지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능한 지적받는 상황을 안 만드는 것이 좋겠지만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내가 지적받는 상황을 만들었다면 받아들이고, 나 또한 방치하는 것이 아닌 수정 가능한 상황이라면 지적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적에 대해 내가 예전에 생각한 선입견을 재고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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