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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일지 (1)

2023.06.09부터 2023.06.12까지

by 양양

<2023.06.09 첫날 밤>

벌써부터 집에 가고 싶은 건 뭐지. 집이 그립다.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공항에서도 정신없고, 택시 타는 것도 너무 어려워서

당장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숙소까지 못 오는 줄 알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무사히 도착한 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

물론 짐 관리와 생활환경, 다 낯설고 힘들지만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빠 말대로 나는 용기를 낸 대한민국의 소수니까.

내일부터 펼쳐질 새로운 여정이 마음껏 기대돼!


<2023. 06.10. >

외로울 때마다 글을 쓰자.

모로 가도 길이 나오긴 나오는구나.

1시간이 넘게 헤맨 끝에

EARLING BROADWAY에 도착했다.

별 것 아닌 커피도 괜히 특별하게 느껴져.

처음으로 영국사람이랑 대화도 해보고.

*물론 무서워서 믿지는 못하겠다.

아무튼 내 인생의 새로운 날이 시작된 건 확실해.

너무 쫄지 말자. 제발 쫄지 좀 마!

우린, 다 같은 사람들이잖아


<2023.06.11>

(1)

무사히 지하철을 타고 '리버풀 스트리트'에 도착했다.

어젯밤 남녀 둘이 한참을 싸우는 소리에 또 잠을 설친 터라 컨디션이 좋지 않다. 아프면 안 되는데..

그래도 값비싼 내 로망 잉글리쉬 블랙퍼스트를 먹으러 왔다. 따뜻한 라떼도 마셨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던 검은 나시 원피스도 과감히 도전했다. 별 거 아니네!

그동안 왜 용기를 못 냈던 건지 원.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2)

브릭레인 마켓을 구경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봤고, 그들은 하나같이 자유롭고 개성 넘친다. 나도 그들 중 한 명으로 보였으면 좋겠다. 복작 복작 활기가 넘치는 분위기!

나까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지금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고 있는데,

어떤 분이 몇 시간째 버스킹을 하신다.

저런 열정은 어디서 분출되는 걸까?

진짜로 노래를 사랑하는 게 느껴진다. 멋지다.


<2023.06.12>

(1)

컨디션이 좋지 않다.

감기에 걸려버렸고, 날씨는 덥고 발은 아프고 꼴은 엉망이다. 영국까지 와서도 비둘기 피해 다니기 바쁜 찌질한 내가, 너무 그대로라 원망스럽다.

무엇하나 쿨하게 해내지 못하는.

여행이 끝나갈 때 즈음에는 조금의 변화가 있을까?

혹시 변화하지 못하더라도 이런 나를 적어도

마음껏 인정할 수 있기를.

어쨌거나 오늘 나는 행복했으니까.

그러면 된 게 아닐까?

매일 새로운 하루가 펼쳐지고 있잖아.



(2)

꿈에 그리던 여행인데. 이러기 싫은데

집에 너무 가고 싶다.

감기 때문에 몸도 힘들고 땀에 젖고 비 맞고 배 아프고 이 와중에 지하철 잘못 타고.

무엇보다 너무 외롭다.

에어비앤비의 작은 방에서 눈치 보는 나도 싫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챙기고 책임져야 하는 것도 힘들다. 근데 이것들을 다 짊어지고 아직도 두 달 넘게 살아남아야 하다니.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방법은 견디는 것뿐이다.

내일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부록>

* 브릭레인의 한 카페에서 쓴 글

왜 나는 항상 특별한 사람을 꿈꿨던 거지? 특별한 사람이라는 게 뭐지 대체?

세상에는 이렇게나 다양한 체형과 피부색과 머리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세상 그 누구도 특별하지 않고, 누구도 평범하지 않다.


정말 행복한데 외로워. 그치만 좋은 외로움이야.

나한테 내가 있어서 소중하다.

내가 항상 내 곁에 있어주고, 누구보다 잘 아니까.

이런 사람 흔치 않잖아. 어려운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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