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번째 언어-스페인어로 살다 # 15
세비야의 골목 가운데는 작은 도시텃밭 하나가 있다. 이 텃밭은 예전에는 공터로 놀고 있던 곳이었는데 오랜 시간 시민들이 땅을 고르고, 텃밭을 가꾸고 모임을 하면서 땅의 권리를 주장했고 결국 시에서 공식적으로 시민의 땅으로 인정을 받은 곳이었다.
시민들의 텃밭을 살펴주고, 매주 월요일마다 그곳에서 화덕에 빵을 구워 나눠주고, 농사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는 이 텃밭의 ‘어른’으로 불리는 사람은 스페인 사람이 아닌 이탈리아 농부 루시아노였다.
그가 스페인에 온 지는 35년, 세비야에 산 지는 20년이 되었다. 처음엔 '기초 예술 갤러리'라는 이름의 '지속 가능한 문화 프로젝트'를 하러 스페인 남쪽 타리파로 왔다. 이 프로젝트는 마음이 맞는 예술가들과 거대한 예술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한다. 대안적인 집을 만들고, 공동생활의 룰을 만들고, 다양한 실험적 프로그램들을 나누며 15년을 그렇게 타리파에서 지냈다. 공동체가 느슨해지고 사람들이 각각 개별 프로젝트를 찾아 다시 흩어질 때쯤 그는 세비야로 건너와 새로운 터를 잡았다.
삶의 근거지가 언제나 작은 마을이고, 공동체였던 그에게 세비야는 첫 도시 생활이었다. 임대한 작은 집에서 도시농업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옥상에 텃밭을 만들고, 집안과 중앙 뜰을 이용해 작은 농사짓기를 시도했다. 그리고 동네 쓰레기장이 된 공터를 가꾸기 시작해서 지금은 그곳이 일주일에 한 번 초등학교 학생들과 가꾸는 '산타 마리아 텃밭'이 되었다.
땅과 함께 살아가니 누구보다도 타국의 도시 세비야에 잘 뿌리를 내리고 사는 듯 한 루시아노 할아버지에게 물었었다.
‘이제 계속 이곳에 사실 거냐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냐’고.
그리고 그의 대답은 나에게 오랫동안 남았다.
“삶은 나무와 같다고 생각해. 가지를 길게, 높게 뻗어 더 먼 세상을 보고, 마음껏 호흡할 수 있지. 하지만 모든 근원은 뿌리로부터 시작되고 결국은 뿌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아마 나도 언젠가는 이탈리아의 고향 섬에 가서 농부로 살게 되지 않을까 싶네.”
스페인에서 5년쯤의 시간이 쌓이며 머물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던 나에게 ‘삶은 나무와 같다’는 문장은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문득 내 삶이 나무라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는 옥잠화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스페인에 뿌리내린 듯 살아가는 이방인들은 한결같이 나에게 말했다. ‘장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외국인과 이방인이라는 단어 사이의 차이는 ‘어디에 머물 것인가? 의 질문과 ‘어느 삶의 자리에 뿌리내릴까?’의 질문 사이의 차이인 듯했다.
한 때는 뿌리 없이 부유하는 자유를 열망했다면 그 순간 나는 뿌리 깊어 흔들림 없는 삶의 자유를 소망하게 되었다. 나의 El árbol de la vida 엘 아르볼 데 라 비다 (삶의 나무)가 어디에 뿌리를 내릴지, 어떤 모양으로 자라 갈지, 그렇게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